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시작된다.
투자자-국가 간 소송은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현지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법 때문에 입은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국제기구의 중재를 받는 제도다.
이번 소송은 한국 정부가 사실상 처음으로 치르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이다. 소송에 질 경우 물어줘야 하는 배상금도 5조 원이 넘는다.
◆ 한국 정부, 론스타와 외환은행 매각 문제로 ISD 시작
세계은행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1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관계자 등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이 참석한 가운데 이번 투자자-국가 간 소송의 1차 심리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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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오는 15일(현지시각) 외환은행 매각 승인 과정을 놓고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를 시작한다. <뉴시스> |
론스타는 2007~2012년 동안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하고 불합리하게 세금을 매겨 약 5조1천억 원에 이르는 손해를 봤다며 2012년 11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중재를 신청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는 이에 따라 1차 심리에서 외환은행 매각 승인과정과 세금 부과에 대한 론스타 측의 주장과 한국 정부의 반론을 듣는 초기 구두심문을 한다고 알려졌다.
1차 심리에서는 관련자들의 진술을 듣는 증인심문 절차도 함께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인들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승인 과정에 관여한 금융당국과 경제부처 수장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1차 심리는 오는 24일까지 10일 동안 진행된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는 이번 심리를 일반인의 참관 없이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 소송 성립 여부로 공방 예상돼
한국 정부와 론스타는 1차 심리에서 이번 소송의 성립 여부를 놓고 관할권 문제로 법적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론스타는 벨기에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자회사들을 통해 외환은행 등 국내 자산에 투자했다. 페이퍼컴퍼니는 실체없이 서류로만 존재하는 상태로 기능을 수행하는 회사다.
론스타는 당시 국내자산 투자가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협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본사가 아닌 벨기에법인을 통해 외환은행을 매각했기 때문에 투자협정에 따라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국세청이 투자협정을 위반하고 자의적으로 8천억 원대의 세금을 물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투자협정에 페이퍼컴퍼니의 투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없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론스타가 실체없는 자회사를 통해 투자한 만큼 투자협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 한국 정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도 쟁점화
이번 심리에서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느리게 진행한 점에 대한 정당성 여부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을 1조3834억 원에 사들였다. 그 뒤 2006년부터 외환은행을 되팔려고 시도했다. 론스타는 국민은행, HSBC은행과 협상이 실패한 뒤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3조9157억 원에 넘겼다.
론스타는 이 과정에서 HSBC은행에 2007년 9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5조9376억 원에 매각하려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늦춰 무산되면서 더 큰 매각차익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이를 근거로 한국 정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외환은행에 관련된 사법절차가 당시 2건이나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매각을 빠르게 승인할 수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론스타는 2006년 12월 외환은행 헐값 매각에 대한 배임사건으로 기소됐다. 2007년 1월에는 외환은행-카드 합병 관련 주가조작 사건으로 기소됐다. 2007년 9월에는 두 사건 모두 법정공방이 진행되고 있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