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KPX그룹의 내부거래를 조사하면서 중견그룹 전반으로 일감 몰아주기 조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24일 화학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정위는 KPX그룹이 계열사 씨케이엔터프라이즈(옛 삼락상사) 등에 일감 몰아주기를 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PX그룹은 화학 제조업에 주력하는 중견그룹이다. 지주사 KPX홀딩스와 핵심 계열사 KPX케미칼을 비롯한 상장사 8곳과 비상장사 19곳, 비상장 해외법인 5곳을 거느리고 있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부동산 임대와 상품 도매업에 종사하는 비상장 계열사다.
양준모 KPX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에서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KPX그룹 관계자는 “공정위의 조사와 관련해 현재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개별 사안을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KPX그룹에서 씨케이엔터프라이즈를 상대로 이른바 ‘통행세’ 방식의 일감 몰아주기를 한 정황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다른 사업자와 상품·용역을 직접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한데도 거래상 실질적 역할이 없는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매개로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2018년 KPX케미칼로부터 52억 원 규모의 물품을 사들였다. 그해 계열 해외법인 ‘VINA FOAM’에 물품을 팔아 매출 67억 원을 냈다. 이 매출액은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서 2018년에 거둔 매출 76억 원의 88.1%에 이른다.
KPX그룹은 연결기준으로 총자산 5조 원 이하라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씨케이엔터프라이즈가 KPX케미칼의 물품을 사들여 VINA FOAM에 파는 과정에서 운송이나 재고 관리 등의 실질적 역할을 맡지 않았다면 부당 내부거래로 판단될 수 있다.
공정위가 앞으로 총자산 2조~5조 원 사이의 다른 중견그룹으로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확대할 가능성도 높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3월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총자산 5조 원 이상인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사회적 감시를 받지만 중견그룹의 부당 내부거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견그룹 대상으로 ‘통행세’ 방식 또는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기로 했다. 양쪽 모두 공정거래법상 금지돼 있다.
공정위는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식품·건설업종 중견그룹을 중심으로 일감 몰아주기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농심그룹 오뚜기그룹 대상그룹 삼양그룹 풍산그룹 등 중견그룹 30여 곳이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에서 201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이 그룹들의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살펴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중견그룹의 일감몰아주기는 공정위에서도 현황을 파악하기 힘들고 규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오너 일가의 승계와 연관된 사익 편취 가능성이 대기업 못지않게 높은 만큼 조사할 필요가 있다”가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