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요청한 5천억 원보다 3배 이상 많은 1조6천억 원을 지원하는데 아시아나항공의 잠재적 인수후보로 꼽히는 여러 기업들이 다양한 이유로 인수에 부담을 느끼는 만큼 아시아나항공에 유동성 문제는 없다는 확실한 신호를 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23일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위한 채권단의 지원방안을 설명했다.
채권단의 지원규모는 모두 1조6천억 원이다. 영구채 매입 5천억 원, 신용한도(크레디트 라인) 8천억 원, 스탠바이LC(보증신용장) 3천억 원으로 구성된다.
이날 확정된 1조6천억 원 규모의 자금지원은 당초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요구했던 5천억 원의 3배 규모다. 당초 시장은 1조 원가량을 예상했다.
최대현 부행장은 지원 규모가 예상보다 크다는 지적에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려면 충분히 지원하고 제대로 된 매각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회사의 안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봤다”고 대답했다.
다만 당장 실제로 투입되는 현금은 5천억 원가량이다.
이번 자금 지원은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지원금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7:3 비율로 부담하는 방식이다.
시중은행은 아시아나항공 지원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사실상 정부의 작품인 만큼 국책은행이 총대를 메고 지원해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원방안이 확정되면서 매각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이번주 안에 매각주간사가 결정되고 다음주 안에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이 업무협약(MOU)을 맺는다.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매각작업이 길어질수록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매각이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아시아나항공과 인수후보를 놓고 여러 말들이 나오면서 아시아나항공을 둘러싼 혼란만 커지고 있다. 매각작업이 본격화되면 현재 손사레를 치고 있는 인수후보들이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SK그룹, 한화그룹, 애경그룹 등이 잠재후보로 꼽히는데 이들 모두 대외적으로는 말을 아끼거나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항공사라는 점에서 분명 탐나는 매물이긴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나 인수 뒤 경영 정상화에 들어갈 자금 규모, 항공사라는 특수성에서 오는 경영상의 어려움, 호남기업이라는 지역 정서 등 여러 요인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먼저 매각을 공식화하긴 했지만 재계에서 ‘주력산업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는 탓에 실제 인수후보들이 참여할 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SK그룹은 사실상 인수에 뜻이 없다는 뜻도 내비쳤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을 놓고 “(항공산업이)국민 생활에 기여할 측면이 많긴 하지만 우리는 좀 더 기술적인 부분에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채권단은 매각이 무산됐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도 남겨뒀다. 산업은행이 공개한 지원방안에는 ‘매각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을 채권단이 임의의 조건으로 매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출자전환 역시 마지막 카드로 남겨놨다. 5천억 원 규모의 영구채를 출자전환하면 지분율이 30% 안팎이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게 되면 매각작업을 주도할 수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연내 매각이 목표라고 밝혔다. 다만 특정 시점을 못 박지는 않았다.
최대현 부행장은 “일정을 정해놓으면 매각과정에서 우리가 다급해지거나 매수자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불리한 협상이 될 수 있는 것을 고려했다”며 “다만 산업은행은 올해 안에는 마무리해야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