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이 약손’이기 때문일까? 의약업계에서도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
보수적이고 변화를 잘 추구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난 국내 제약회사에 여성 CEO가 탄생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에서도 여성 CEO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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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원 부광약품 공동 대표이사 사장 |
의약업계를 총괄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도 첫 여성 수장이 취임했다.
2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 가운데 유일한 여성 CEO는 부광약품의 유희원 사장이다.
유 사장은 지난달 20일 이사회에서 부사장에서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유 사장은 김상훈 사장과 함께 부광약품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유 사장은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2년간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으며 1999년부터 부광약품에 입사했다.
유 사장은 취임사에서 “연구개발에 집중해 신약개발에 힘쓸 뿐 아니라 외형성장에도 기여하겠다”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해 전 직원이 행복한 회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부광약품은 아락실과 파라돈탁스 등으로 잘 알려진 제약회사다.
김성률 명예회장과 김동연 회장이 공동으로 1960년 세운 부광상사가 모태기업이다. 김 명예회장 타계 뒤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돼 왔다. 그러다 2013년 잠시 김동연 회장의 장남 김상훈 사장이 단독 대표이사를 맡았다.
유 사장의 취임은 제약업계에 신선한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50대 초반으로 젊은 데다 오너 일가가 아니면 여성이 대표이사를 맡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국적제약사 한국법인의 경우는 다르다. 현재 다국적제약사의 한국인 여성 CEO는 모두 7명이다. 김수경 GSK한국 상무는 22일 GSK컨슈머헬스케어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이밖에 김옥연 한국얀센 대표, 배경은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대표, 김은영 한국BMS제약 대표, 박희경 젠자임코리아 대표, 주상은 한국레오파마 대표, 유수연 멀츠코리아 대표 등이 다국적 제약사를 이끄는 여성 전문경영인들이다.
다국적 제약사는 여성직원 비율이 남성에 비해 훨씬 높아 여성에게 승진기회가 더 많다. 또 출신이나 인맥 등을 따지기보다 성과중심의 인사를 하는 외국회사의 풍토도 여성 CEO들을 배출하는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외국계 제약회사는 국내에 생산기반이 없이 판매 중심이기 때문에 국내 제약회사에 비해 남성보다 여성 직원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에 반해 국내 제약회사는 지금까지 판매나 마케팅보다 연구개발과 생산, 영업 등의 업무가 많아 여성들이 진출하기 쉽지 않았다. 또 오너 중심의 가족경영과 보수적 조직문화도 여성CEO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이런 풍토는 앞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의약학과 전공 여성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데다 제약사들의 해외진출로 마케팅 역량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조짐은 정부 조직이나 의약단체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일 2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 김승희 전 식약처 차장이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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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희 신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
김 식약처장은 1954년 서울 출신으로 경기여고와 서울대 약학과를 나와 미 노틀댐대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88년 국립보건안전연구원 보건연구관으로 공직에 들어가 식품의약품안전본부 독성연구소 생화학약리과장과 국립독성연구소 병리부 종양병리과장,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독성연구부장,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 식품의약품안전청 차장 등을 지냈다.
식약처장 자리는 정승 전 식약처장이 광주 서구을 재보선 출마를 위해 물러나면서 공석이 됐다. 인선이 미뤄지면서 많은 '남성' 후보들이 거명됐으나 결국 김 식약처장이 선임됐다. 식약처에 여성 수장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서울시의사회에도 김숙희 고려대 의대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됐다. 서울시의사회에 여성이 회장에 뽑힌 것은 1915년 창립 이래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