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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9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2015 지식향연’에 강연자로 나와 대학생 1천여 명을 상대로 강연하고 있다.<뉴시스> |
인문학이 위기다. 국내기업들은 갈수록 인문학 전공자 채용규모를 줄이고 있다. 취업률에 목마른 대학들도 인문학 관련 학과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인문학 열기는 오히려 대학 캠퍼스의 바깥에서 뜨겁다. 인문학 서적들은 여전히 판매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대중적 인문학 강좌들도 직장인들부터 주부들에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기업 CEO들도 인문학 부활을 적극 외치고 있다.
왜 하필 인문학일까?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인문학 전도사로 다시 나섰다. 정 부회장은 9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2015 지식향연’ 프로젝트의 첫 번째 강연자로 연단에 섰다.
이 프로젝트는 전국대학을 돌며 진행되는 콘서트 형식의 인문학 전파프로그램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부터 이 행사를 후원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에도 후원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무대에 올라 대학생들 앞에서 강연했다.
정 부회장은 올해 강연에서 스마트시대를 화두 삼아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각종 스마트기기가 우리 삶과 깊숙이 연결된 시대가 됐고 이러한 기술의 발달이 인류에게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동시에 인간본연의 사고력과 판단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인지하는 비판적 사고를 갖기 위해 세 가지를 제안했다. 인문학적 지혜를 담은 책읽기, 하버드대 신입생 글쓰기 훈련프로그램을 들어 많이 생각하고 직접 글을 써볼 것, 주변사람들과 토론을 통해 사고와 논리를 정교하고 풍성하게 다듬을 것 등이다.
정 부회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녔다. 그는 강연에서 강조했듯 인문학 중시자이며 실제 그룹 경영에서 이를 실천하는 모습도 보인다.
신세계그룹은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인문학적 소양 등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대졸신입사원의 경우 인문계열 전공자가 43%로 상경계열 전공자 35%보다도 높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도서구입비로만 1억 원 넘게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에 사내도서관, 신세계I&C에 전자도서관이 있다. 정 부회장이 임직원들에게 책읽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2012년 이마트 본사에 들어선 도서관은 역사 경제 예술 등 분야별 장서만 1만 권이 넘게 소장돼 있다. 지방근무 직원들이 원할 경우 책대여 배송도 해주고 있다.
정 부회장 외에도 직원들에 책읽기를 강조하는 CEO들도 적지 않다.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대표이사도 대표적 독서광이다.
김 사장은 최근 삼성그룹 사내외보 ‘삼성앤유 프리미엄’ 40호에서 자신의 서재를 공개했다. 경영 경제는 물론 역사와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장서들이 김 사장의 서재에 가득차 있다.
김 사장은 사보에서 “서재는 보물창고, 책은 보물과 같다”면서 “역사책을 읽으면 과거 영웅들의 혜안을 배울 수 있고, 인문 서적에서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깨닫는다. 미래학자가 쓴 책을 읽으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인문학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임 위원장은 지난해 이화여대에서 가진 한 특강에서 “CEO의 절대 다수가 인문학이 사람에 대한 통찰과 사고력, 판단력을 길러줄 뿐 아니라 창의적 발상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대학생들에게 문학 역사 철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조언했다.
기업 CEO들이 인문학을 중시하고 애정을 보이는 풍토는 긍정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기업의 채용방식이나 조직문화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이 돈벌이를 위한 또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하는 데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인문학이 기업이나 기업인의 이미지를 미화하는 상품으로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인문학은 인간 본연의 가치와 정신을 탐구하는 것이다. 최근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책이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기업들에 부는 인문학 열풍이 자칫 너무 넓고 얕은 것은 아닌지, 상업주의의 거품이 잔뜩 낀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