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지루한 일상으로 느껴진다면 상영 중인 다양성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그날이 그날인 것같은 일상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며 때로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것이다.
1일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나린 라바키 감독의 영화 ‘가버나움’이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1월24일 개봉해 약 4만 명 넘게 영화를 관람했다.
상영관을 찾기 쉽지 않은데도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이다.
가버나움은 레바논 베이루트의 실상을 담은 영화다. 가버나움은 성경에서 유래한 옛 지명으로 예수가 가장 많은 기적을 행했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2천 년의 시간이 흐른 이곳은 예수의 손길이 닿지 않는 혼돈 그 자체다. 영화는 소년 ‘자인’이 그를 낳아준 부모를 법정에 고발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스틸 이미지는 호기심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열 두어 살 쯤 돼 보이는 소년이 겨우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아기를 안은 채 텅 빈 눈길로 어딘가를 바라본다.
두 아이의 피부색은 완연히 다르다. 한 핏줄 형제가 아닌 것은 분명한데 둘은 우연찮게 가족으로, 엄밀히 말하면 모자 관계로 묶여 버렸다. 아이를 낳고도 돌보지 않는, 혹은 돌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꾸짖는다.
내전이 할퀴고 간 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레바논 베이루트가 무대다. 카메라는 베이루트 빈민가의 일상을 비춘다. 전쟁이 끝났지만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곧 전쟁인 일상이다. 아이에겐 출생서류가 없어 나이도 치아 상태를 통해 유추될 뿐이다.
열 살이 겨우 넘어 보이는 여동생은 생리가 시작되자마자 결혼이란 이름으로 팔려가 채 1년도 안 돼 임신 출혈로 죽어간다. 아프리카에서 베이루트로 일자리를 찾아 건너온 여자는 역시 불법체류로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신세다.
서류가 없는 이들은 법의 보호 대신 위협에 시달린다. 열 두어 살 아이가 젖도 못 뗀 아기를 돌보며 생존을 위해 극한상황을 헤쳐나가는 비참한 현실, 그마저도 일상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가족이란, 부모란, 사회란, 법이란, 종교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어른을 부끄럽게 만드는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배우가 아닌 실제 난민들이 연기했다.
배우 뺨치게 연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이는 착각이다. 이들은 연기가 아니라 현실 그대로를 재현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은 지구촌 도처에서 살아가고 있다.
매우 이기적이긴 하나 일상과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영화다. 손수건과 약간의 현금을 지참할 것을 권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출구에 성금함이 놓여 있을 것이다. 예수의 구원이 필요한 곳에 종종 영화라는 예술이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