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통신장애에 따른 영업손실을 보상해준 사례는 없다.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황 회장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번 KT 화재는 이전 통신장애들과는 달리 피해 복구에 걸리는 시간이 길었고 정치권과 정부에서도 소상공인의 피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보상 범위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마포갑)은 9일 화재가 발생한 11월 넷째주 주말(24~25일) 마포구와 서대문구 카드결제액(538억9563만 원)이 전주 주말보다 30억58만원(5.3%) 급감했다는 통계를 내놓고는 “KT는 소상공인의 매출 손실 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의 피해까지 조속히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7일 현장을 찾아 “사후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에 정부와 기업의 신뢰가 좌우되는 만큼 KT가 이윤 못지않게 소상공인 피해 보상에도 신경을 써 책임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황 회장도 넉넉한 보상을 통해 화재로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단박에 회복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통신사의 사례는 없지만 제조사들이 자사 제품에 하자가 생겼을 때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위험에 적극 대처해 위기를 기회로 삼은 사례들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2년 전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 때 최고경영자(CEO)가 곧장 사과하고 세계적으로 갤럭시노트7의 판매를 중단함과 동시에 제품을 회수했다.
도요타도 2009년부터 2010년 발생한 급발진사고와 관련해 900만대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을 결정했다. 두 회사 모두 당시에는 경영상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지만 고객의 신뢰를 되찾아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KT 화재의 간접 피해 보상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황 회장 처지에서 배려심 넘치는 보상안을 제시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례도 없다. 1994년 KT 전신인 한국통신의 서울 종로5가 통신구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나, 2014년 SK텔레콤 휴대전화 불통사태 때에도 각 통신사들은 간접적 피해와 관련한 보상 규정은 없다고 피해 보상 요구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SK텔레콤 소송에서는 법원마저 “택배기사나 대리운전사들의 영업손실 규모를 헤아리기 어렵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화재 때문에 지금까지 KT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황 회장이 통큰 피해 보상을 결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KT는 일차적으로 직접 통신장애를 겪은 KT 유선과 무선 가입고객에게 1개월~6개월 요금을 감면하기로 했는데 이에 따라 317억 원 규모의 일회성 비용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올해 4분기 KT의 영업이익 예상치의 16.1%에 이르는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화재가 난 아현지사 통신구를 복구하고 유사시를 대비해 백업망까지 새로 구축하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5G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다른 통신사와 마찬가지로 KT도 신사업에 쓸 자금조차 빠듯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KT가 간접 피해 보상액을 산정한다면 소상공인들의 카드결제액 감소액을 화재 발생 전주와 비교해야할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야 할지, 최근 평균치를 내야 할지 등 기준을 정하기도 난감할 것”이라며 “이번 화재를 두고 정부와 정치권 모두 KT의 사후 처리를 주시하고 있는 만큼 황 회장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12일부터 26일까지 2주 동안 통신장애 지역 주민센터 68개소에 직원을 상주시켜 서비스 장애사실을 접수받기로 했다.
KT 관계자는 “KT는 접수된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보상액과 위로금을 지급하게 될 것”이라며 “일단 피해 내용을 접수받는 것이고 대상자와 지급 규모는 개별 통지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