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
구광모 시대’를 위한 세대교체의 물꼬를 텄다. 핵심 계열사 대표이사에 외부인사를 앉히는 파격을 선보였다.
박진수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은 그동안 교체될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으로 꼽혔는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LG그룹 계열사 다른 부회장들의 거취도 불투명해졌다.
9일 재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LG그룹을 혁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인사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경영 안정을 꾀하기 위해 LG그룹을 이끌고 있는 6인의 부회장단체제를 일정 기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번 박 부회장의 교체 결정을 통해 대대적 물갈이 인사를 예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그 시작이 박 부회장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이뤄질 인사폭이 상당히 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 부회장이 미래 먹거리 사업인 전지사업을 꾸준히 키워 올해 3분기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그의 교체는 계열사 부회장 모두가 인사 사정권 안에 있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미 구 회장의 경영 파트너로 낙점된
권영수 LG 대표이사 부회장은 자리를 유지하더라도 나머지 5인의 부회장 자리에 ‘
구광모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파격 인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LG화학 대표이사에 창립 이래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앉힌 점을 놓고 보면 구 회장이 과거 스타트업이나 미국 유학 경험을 살려 외부 인재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시선은 우선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몰린다.
한 부회장은 LCD 패널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올레드(OLED)로의 사업구조 변화를 결심했는데 투자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환 투자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올레드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8천억 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과 3천억 원 규모의 그린본드 계약을 체결했으나 최근 입사 5년차 이상 생산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할 정도로 경영상황이 좋지 않다. 희망퇴직 인원은 2천 명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디스플레이의 성장 모멘텀이 올레드 패널에 걸려있는 만큼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다.
조성진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2016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해 올해 3월 LG전자 대표이사에 올랐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이다.
그러나 구 회장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장사업과 적자사업 스마트폰 사업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대목은 조 부회장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LG전자가 여러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가전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도 인사 사정권 밖에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애초 업계는 하 부회장과 권 부회장과 자리바꿈을 하는 원포인트 인사가 이뤄진 점을 근거로 하 부회장은 인사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의 퇴진 여파가 하 부회장에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 부회장이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 시대의 상징적 인물인 동시에 통신사업 관련 경험이 없다는 점도 그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LG유플러스는 앞으로 펼쳐질 5G 시대의 주역이 될 가장 중요한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만큼 통신이나 미래사업 관련 경험이 풍부한 인물을 파격적으로 영입할 수도 있다.
최고 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은 무풍지대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
차 부회장은 2004년 외부에서 영입돼 그 2011년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지금까지 가장 장수하고 있는 임원으로 최근 고급 화장품 브랜드를 공략해 올해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룹 총수 교체라는 큰 계기가 생긴 만큼 젊은 대표이사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