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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4월22일 열린 제14회 우정선행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김숙자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8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그는 창업주인 부친과 함께 코오롱그룹의 기틀을 세웠다. 국내 화학섬유시대를 연 주역이다.
이 명예회장은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부친 이원만 회장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대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대구에서 부친과 함께 코오롱의 모태인 한국나일론을 세웠다. 한국나일론은 국내 첫 나일론 공장이었다.
그는 국내 섬유산업을 일구며 1960년대부터 수출을 주도했고 나일론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한국의 화학섬유산업을 열었다.
그는 부친이 정계에 진출한 뒤 1977년부터 회사 대표에 올라 경영을 책임졌다. 당시 한국나일론은 한국포리에스텔과 합병해 회사이름을 코오롱으로 바꾸었다.
이 명예회장은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고 코오롱이 1980년대 필름 및 산업자재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1990년대 고부가가치의 첨단 섬유제품을 개발하는 데 초석을 다졌다.
그는 1996년 장남인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1982년부터 1995년까지 14년 동안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냈다. 고인은 경총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명예회장은 체육계의 발전에 기여했다. 여자실업농구연맹 회장, 대한농구협회 회장, 대한골프협회 회장, 2002 월드컵 축구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마라톤에 남다른 관심을 쏟아 코오롱 마라톤팀을 운영하면서 이봉주 등 국가대표들을 길러냈다.
이 명예회장은 경영어록집 '인간, 기업 그리고 기업가정신'에서 "나는 마라톤을 좋아한다. 승리를 위해 일정한 페이스로 힘차게 달려가는 마라톤이 단숨에 빨리가 아니라 정도로 쉼 없이 달리는 나의 인생 철학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또 등산을 즐겼고 인생과 경영을 등산에 비교하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등산하는 기분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나는 나 나름대로 정상을 향한 높은 이상을 세워놓고 꾸준히 그리고 착실히 한걸음 한걸음을 걸어왔다. 나는 인생의 등산길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소망과 용기를 갖고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가능성을 찾아 도전해 왔다."
그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취미인 미술활동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직접 그린 그림으로 1992년 고희전, 2001년 팔순전 등을 열었다.
유족으로 이웅열 코오롱 회장 등 1남5녀가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우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