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4-06-21 15:33:21
확대축소
공유하기
▲ 경주마 성적, 현재 배당률 등을 확인하고 경마 생중계를 볼 수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더비온'의 모습. <더비온 화면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너 엄마 삼촌이 경마하다가 패가망신한 거는 알지? 절대로 경마 같은 건 하면 안 된다.”
부서를 이동하면서 한국마사회를 출입처로 배당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가 신신당부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1500원을 걸고 1450원을 딴 순간의 일이다.
시대가 달라져 경마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행성 오락의 종류가 많아졌다. 불법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수준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마사회의 온라인 마권 정식발매는 오히려 다소 늦은 감도 없지 않다. 온라인 불법도박 규모가 커진 가운데 합법화된 사행산업인 경마가 접근성을 높여 지하경제 양성화를 가능케 할 수 있을지, 경마에 문외한인 기자가 직접 체험해 봤다.
한국마사회가 21일부터 온라인 마권 정식 발매를 시작하면서 대면 확인을 거친 21세 이상의 대한민국 성인은 누구나 경마장이 아닌 곳에서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더비온’으로 마권을 살 수 있게 됐다.
온라인 마권 서비스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지문과 계좌를 등록하면 신청이 가능하다. 다만 대면 등록 절차가 필요해 신분증을 들고 경마장 또는 장외발매소를 반드시 한 번은 방문해야만 한다.
기자도 대면 등록 절차를 위해 21일 오전 한국마사회 선릉지사를 방문했다. 한국마사회 선릉지사는 금요일에는 경마 경기를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선릉지사는 매우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대면 등록 절차는 문제 없이 진행됐다.
▲ 한국마사회 선릉지사 대면등록창구의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더비온 앱을 통해 지문과 계좌를 등록하는 절차를 선릉지사에 오기 전에 미리 마쳤기 때문에 대면 등록 절차는 예상보다 신속하게 마무리됐다.
다만 빠르게 진행됐긴 했으나 절차가 허술한 것은 아니었다.
핸드폰과 신분증을 제출하는 등 기기 및 본인 확인 절차가 철저히 진행됐다. 핸드폰으로 인증 번호를 받아 알려주는 2차 본인 확인 절차도 거쳤다.
이에 더해 온라인 마권의 나이 제한이 19세에서 21세까지 올라간 점 또한 청소년의 접근을 막아 사행성 우려를 줄이겠다는 한국마사회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온라인 마권 구매 한도 역시 경주당 5만 원으로 오프라인 10만 원보다 낮춰 접근성 확대에 따른 과몰입과 사행성 확산 방지 장치를 뒀다.
온라인 마권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우선 잔액을 충전해야 했다.
농협 계좌가 없었기 때문에 경마 참여를 위한 잔액 충전은 가상계좌를 통한 수동 입금으로 진행해야 해 수수료를 200원 지불했다. 농협 계좌를 보유한 고객은 자동이체, 실시간이체 등을 통해 수수료 없이 잔액 충전이 가능하다.
선릉지사를 나온 뒤 금요일 경기를 운영하는 장외발매소의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근처의 청담지사로 향하며 생애 첫 마권 구매를 온라인으로 진행해 봤다.
마권을 구매하는 방식은 단승식, 연승식, 복승식, 쌍승식, 복연승식, 삼복승식, 삼쌍승식 등 모두 7개였다.
단승식은 1위 말을 맞춰야 돈을 받는 방식이고 연승식은 3위 안에 들어오는 말 가운데 한 마리만 맞추면 돈을 따는 방식을 뜻한다. 쌍승식은 1등과 2등을 정확히 적중해야 하고 복승식은 순서 상관없이 1, 2등으로 들어오는 말을 맞추면 된다.
복연승식은 3등 안으로 들어오는 말 가운데 두 마리를 순서 관계없이 고르면 되고 삼복승식은 3등 안으로 들어오는 말 세 마리를 순서 관계없이 맞추면 이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삼쌍승식은 1등, 2등, 3등을 정확히 맞춰야 되는 방식이다.
▲ 금요일에는 장외발매소를 운영하지 않는 한국마사회 선릉지사의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에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배당률이 높은 경주마의 마권을 연승식으로 구매했다.
버스에서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 앱으로 경마를 준비하는 말들을 보는 것은 흡사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 경마장의 마권 발매가 마무리됐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고 본격적인 중계가 흘러나오자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크게 승리한다면 다음 주부터는 경마 전문 기자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잠시 고민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제주 경마장 1경기가 시작됐고 기자는 마권을 구매한 경주마를 내면의 아우성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다른 말들에 앞이 막혀 힘을 쓰지 못했다. 어떻게든 앞으로 치고 나오려고 노력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6등과 8등으로 800m 경기를 마무리했다. 결국 온라인 마권은 순식간에 데이터 쪼가리가 됐다.
채찍을 맞으며 힘들게 달려준 말이 아니라 1천 원으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셔보겠다는 큰 욕심을 낸 자기 자신을 비난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 잡고 버스에서 내리면서 바로 다음 온라인 마권 구매를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나름 머리를 굴려서 나온 해결책은 배당률이 낮은 말이 강한 말이라는 뜻이니 단승식 배당률이 낮은 말 가운데 연승식 배당률이 높은 말을 고르고 연승식 배당률이 낮은 말 가운데서 단승식 배당률이 높은 말을 고르면 돈을 크게 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방식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단승식에 건 500원은 역시나 데이터 쪼가리가 됐지만 연승식에 건 500원으로 850원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긴 했지만 내가 걸었던 말이 치고 올라오면서 3위로 들어오기까지 긴장과 흥분은 중계임에도 상당했다.
▲ 한국마사회 청담지사의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무엇보다 언제 어느 때라도 마권을 사고 경마를 구경할 수 있다는 편의성이 뛰어났다. 약간의 지연시간은 있으나 생중계를 통해 경마의 긴장감과 즐거움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접근성은 극대화된 것이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온라인 마권 발매 정식 운영을 맞아 건전한 경마 문화 확산과 디지털 기반의 고객 서비스 환경 구축을 위해 한층 더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청담지사에 도착하자 많은 방문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객 중에서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핸드폰으로 온라인 마권 등록 과정을 진행하는 손님도 있었다.
다만 장외발매소 방문객 가운데 대부분은 머리가 하얗게 센 분들이었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장외발매소를 온라인 마권 발매가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는 의문도 남았다.
앞서 정황근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해 3월 국회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온라인 경마가 활성화되면 그만큼 장외 발매소를 축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