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23년 9월14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재정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었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서는 숙원사업 가운데 하나인 건보공단 특별사법경찰제 도입에 힘을 실을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는 정부가 전날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놓고 성명서를 통해 “이번 건보 종합계획에는 보장성 강화 목표와 실행계획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건강보험 재정대책에는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재정을 위해서 국민의 합리적 의료 이용을 유도하고 불필요한 의료쇼핑, 의료과다 이용을 제한하기 위한 방안이 제시됐다”며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는 건강보험의 세 주체인 정부, 공급자, 가입자 모두의 책무가 있는데도 정부는 가입자의 의료 이용 제한과 극소수에 불과한 의료쇼핑 차단으로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의 건보 종합계획이 보장성 강화를 외면하고 재정 안정성 강화를 위해 가입자인 국민의 부담만을 늘리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건보 종합계획에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보완하기 위해 공공정책수가제를 도입하고 연간 외래진료 횟수에 따라 본인부담률을 올리는 등 내용이 담겼다.
보건복지부가 보장성 강화보다는 재정 안정성 강화에 무게를 둔 것은 그만큼 건보 재정 고갈의 위기감이 커진 데 따른 대응으로 읽힌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종합계획을 놓고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인한 사회 전반의 축소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종전 건강보험 정책은 보장률 제고에 편중돼 현행 지불제도가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는 더 악화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건보공단을 이끌고 있는 정 이사장에게도 건보 재정 관리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정 이사장은 건보 재정 관리와 관련해 공단 특사경 도입에 주로 목소리를 내왔다. 정부의 건보 재정 안정성 강화 움직임을 계기로 특사경 도입을 향한 요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과잉 진료나 검사를 줄이는 등 올바른 의료이용을 돕는 ‘현명한 선택’이 확산되도록 적극 지원하고 과다 의료이용에 합리적 관리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며 “불법개설기관 근절을 위한 공단 특사경 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사경은 특정 분야에서 행정공무원 혹은 공공기관 직원 등에 사법경찰과 같은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
일반 사법경찰이 전문성을 지니기 어렵거나 경찰이 즉각 투입되기 어려운 특수한 상황에 한해 인정된다. 현재 특사경이 도입된 사례는 금융감독원 임직원, 민영교도소 소장 및 직원, 국립공원관리공단 임직원, 선박과 항공기에서 선장과 기장 등이다.
정 이사장은 이른바 ‘사무장 병원’을 비롯해 면허대여약국 등 불법적으로 개설된 의료시설을 단속하기 위해 공단 특사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불법적으로 개설된 의료시설은 애초에 건강보험 급여의 대상이 아님에도 불법으로 급여를 수급하는 등 건강보험 재정을 좀먹는 주범으로 꼽힌다. 또한 의료기관의 본래적 목적보다는 비급여 치료를 과다하게 실시하는 등 영리 추구에 집중한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0월18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단 특사경을 꼭 도입하고 싶다”며 “2023년 7월까지만 봐도 사무장 병원의 피해액이 3조4300억 원”이라고 말했다.
다만 경찰과 의료계의 강한 반대를 누그러뜨리고 정치권을 설득하는 일은 정 이사장이 공단 특사경 도입을 위해 힘써야 할 과제로 보인다.
공단 특사경 도입과 관련해 제22대 국회가 개원한 2020년 이후에만 4건이 발의됐으나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진행된 공단 특사경 도입 논의에서 의원들은 건보공단에 공단 특사경이 도입됐을 때의 긍정적 효과를 놓고 구체적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2024년 1월에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1법안심사소위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번 회의 때도 공단 특사경의 필요성에 전반적으로 공감했다”며 “다만 반대를 하거나 우려하는 위원의 우려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필요성을 해명해 달라 부탁했는데 여전히 자료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도 “지금까지 공단이 사무장 병원을 직접 수사하지 못하고 고발만 해 왔는데 고발만으로 부족하고 공단이 직접 수사하면 이런 점에서 더 나을 것이라는 부분 등을 놓고 위원들 방을 찾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