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 경쟁에서 선두인 TSMC와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경쟁에 가세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후발주자들과 2위 경쟁이 치열해지면 삼성전자의 시장 입지가 축소될 가능성이 커 삼성전자가 목표로 삼은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도전의 길도 순탄치 않을 수 있다.
▲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 경쟁에서 선두인 TSMC와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경쟁에 가세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후발주자들과 2위 경쟁이 치열해지면 삼성전자의 시장 입지가 축소될 수 있는 만큼 삼성전자가 목표로 삼은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도전의 길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전경과 내부.
30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세계 파운드리 시장이 다자 경쟁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은 TSMC가 과반을 넘는 점유율로 선두를 유지하고 삼성전자가 뒤쫓는 형국인데 미국의 인텔과 일본의 라피더스가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이 26일 내놓은 실적 발표의 내용을 보면 지난해 4분기 실적과 올해 1분기 실적 전망치는 증권가의 기대치를 밑돌았지만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기존 고객인 미디어펙을 포함해 클라우드와 에지컴퓨팅, 데이터센터 솔루션 분야의 선도 공급자들을 고객으로 추가할 수 있었다는 데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화한지 불과 2년도 안됐지만 빠른 속도로 고객을 확보하며 순조롭게 사업을 키우고 있다. 앞서 인텔은 퀄컴과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초기 고객사로 확보한 데 이어 미국 국방부 물량도 따냈다.
인텔이 오랜 기간 반도체 분야에서 설계·제조를 모두 담당하며 기술역량을 축적한 데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공급망 강화 정책까지 맞물리며 파운드리 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인텔은 2나노미터 공정의 ‘인텔20A’와 1.8나노미터 공정의 ‘인텔18A’를 각각 2024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삼성전자나 TSMC보다 앞서 양산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말 파운드리 전문기업 ‘라피더스’가 출범해 파운드리 경쟁 대열에 들어설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5년 상반기까지 2나노공정 설비 라인을 만들고 2027년부터 2나노 이하 제품을 양산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가 주도하고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키오시아, NTT, NEC, 덴소, 미쓰비시 UFJ은행 등 8개사가 합작해 세운 회사로 향후 10년 동안 5조 엔(약 48조 원)을 설비투자 등에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은 1980년대 시장 점유율 50%에 이를 정도로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이후 한국과 대만 등 후발주자에 주도권을 넘겨 주게 된 만큼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금도 일본은 반도체 소재·장비 분야에서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강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파운드리 시장의 경쟁 심화는 선두인 TSMC보다 2위 삼성전자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TSMC는 파운드리 1위 기업으로 시장 입지를 단단히 구축해 놓은 만큼 업황 하락이나 경쟁 심화 등의 요인에 따른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삼성전자는 외부 요인에 대한 민감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56.1%로 과반을 훌쩍 넘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15.5%에 그쳤다. UMC(6.9%), 글로벌파운드리(5.8%), SMIC(5.3%) 등이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투자 측면에서도 TSMC에 뒤처진다. TSMC는 대만과 미국을 중심으로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4년 동안 1300억 달러(약 160조 원)을 투자하기로 한 반면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비메모리반도체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은 133조 원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투자 계획에는 파운드리뿐 아니라 설계 등 다른 분야 투자까지 포함돼 있는 만큼 파운드리만 따로 떼어 놓은 투자금액에서는 TSMC와 차이가 더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과 라피더스의 파운드리 시장 진입 본격화로 경쟁이 심화됐을 때 파운드리 시장에서 선두 쟁탈전 보다는 2위 경쟁이 더 치열하게 전개될 공산이 크다.
실제 인텔은 세계 2위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랜디르 타쿠르 인텔파운드리서비스(IFS) 사장은 지난해 말 닛케이아시아와 인터뷰에서 “2030년까지 세계 2위 파운드리업체로 도약하겠다”며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선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직면한 후발주자들의 도전은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비전의 실현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71조 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제시한 바 있다. 파운드리는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로 파운드리의 성패는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의 성패와도 직결된다.
하지만 TSMC와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맞게 된 파운드리 시장의 경쟁 심화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며 삼성전자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상황에 몰리게 된 셈이다.
글로벌 파운드리 산업이 향후에는 대만, 한국, 미국, 일본의 4자 구도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첨단 제조 공정 기술력을 지니고 있지만 파운드리에 선도적으로 진입한 대만 기업 TSMC에 밀리고 있다”며 “TSMC는 30년 이상 축적해 온 반도체 제조 공정 노하우와 견고하게 다져진 시장입지 등의 강점을 보유했다”고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한국의 강점인 반도체 제조분야에 미국과 일본의 진입이 가시화되고 있어 파운드리 경쟁구조 변화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파운드리 시장 구도가 2025년 대만, 한국, 미국 3자 구도로, 2027년 대만, 한국, 미국, 일본 4자 구도로 전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