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삼성생명공익재단에 따르면 재단은 3월 안에 이사회를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후임 이사장을 선임한다.
이 부회장은 2015년부터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라 더 이상 이사장으로 재직하기 어려워졌다.
재단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사임은 결정됐으나 이사회 시기와 후임 인선 등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1982년 동방사회복지재단으로 설립됐다. 초기 장애아동재활과 노인복지사업을 하다가 1984년부터 삼성서울병원 건립을 추진하며 의료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2019년 기준 총자산은 2조1323억 원으로 아산사회복지재단(2조2780억 원)과 함께 국내 공익재단 1~2위를 다툰다.
다수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해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삼성물산 지분 1.07%, 삼성생명 지분 2.18%, 에스코어 지분 0.14%, 미라콤아이앤씨 지분 0.15%를 들고 있다. 지분가치만 6천억 원에 이른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초대 이사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였다. 그 뒤를 이어 한동안 조우동 전 삼성중공업 회장이 이사장을 맡았다가 1988년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이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건희 전 회장은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 의혹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1996년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이수빈 당시 삼성생명 대표이사 회장이 이사장을 맡다가 이건희 전 회장이 2012년 경영에 복귀하면서 다시 이사장에 올랐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번에 물러나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은 9년 만에 비오너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위상에 맞는 이사장 선임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전 사례인 이수빈 회장은 삼성에서 처음으로 일반사원에서 회장까지 승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그룹 회장 대행을 맡았을 정도로 그룹 내에서 존재감과 영향력이 상당했다. 조우동 전 회장 역시 삼성전자·제일모직·삼성중공업 등 주요기업 회장으로 두루 재직한 그룹의 원로였다.
삼성생명 대표를 맡고 있는 전영묵 사장이나 삼성생명공익재단 대표인 임영빈 사장 등은 이들에 비하면 중량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외에도 현재 삼성그룹에 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경영진은 없다.
이를 고려해 외부의 명망있는 인사를 이사장으로 선임할 가능성도 떠오른다. 삼성문화재단은 2020년 이재용 부회장의 후임 이사장으로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선임했다. 김 전 총리는 호암재단 이사장도 겸직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역시 삼성그룹에서 삼성생명공익재단 못지 않은 의미를 지닌 곳이다. 1965년 세워져 삼성그룹 공익재단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됐고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화재, 삼성생명, 삼성생명 등 계열사 지분도 다수 들고 있다.
재계에서 공익법인에 명망가를 '모시는' 일은 드물지 않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를, 롯데문화재단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이미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진에도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김용학 전 연세대학교 총장 등 사회 원로급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반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중요도를 고려해 오너일가 이사장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시선도 없지는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물러난 뒤 모친 홍라희 전 삼성리움미술관장이나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에게 자리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2019년 삼성공익재단에 개인자격으로 억대를 기부하기도 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전 회장 사후 상속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선임이 상속절차와 맞물려 함께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