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당초 이날 하기로 했던 대국민 사과를 정기국회가 끝난 뒤로 미루기로 했다.
대국민 사과를 두고 당내 반발이 적지 않은 데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의 여당 단독처리를 놓고 대여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는 당내 의견도 고려해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 계획을 취소하는 게 아니라 시기를 조정하고 사과의 메시지를 다듬는 선에서 조만간 대국민 사과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민의힘 안에서는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놓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한 것으로 파악된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 내부에서 사과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혼재돼 있는데 반대가 약간 더 많다고 느껴진다”며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처음에는 대국민 사과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찬성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대선주자들과 일부 다선 중진의원들도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힘을 보태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4년 전 12월9일 국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했지만 4년 동안 우리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우리가 헌법가치와 법치주의에 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대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유승민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탄핵을 넘어서야 한다",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며 김 위원장을 거들었다.
서울의 4선 박진 국민의힘 의원도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잘못을 반성하는 것은 보수의 참 모습”이라며 “우리가 배출한 두 전직 대통령이 사법판단을 거쳐 영어의 몸이 된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안에서 과거 정권을 향한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나뉘는 탓에 이 문제를 놓고 타협을 이루기 쉽지 않다고 본다.
대국민 사과에 찬성하는 쪽은 과거와 철저히 단절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지만 이에 반대하는 쪽은 과거 보수정권 시절에 관한 향수를 품고 있어서 사과한다는 게 못마땅하다.
보수층 일부에서는 아직도 탄핵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고 탄핵에 동조한 당내 인물들을 배신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당내 ‘콘크리트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있는데 지지 세력의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운 만큼 당내 의원들 일부도 섣불리 과거와 단절하자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이런 과거에 관한 인식 차이가 결국 당내 계파 분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이미 국민의힘은 이 문제로 분열을 경험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유승민 전 의원을 주축으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이 탈당해 바른정당을 세웠다.
당시 새누리당에서 바른정당으로 옮긴 의원 수는 최종적으로 33명이었는데 큰 규모의 분화였다. 이들은 탄핵 사태를 불러일으킨 구태의연한 보수의 모습을 벗어나 새로운 보수를 표방했지만 결국 올해 총선을 앞두고 다시 친정으로 복귀했다.
물론 현재 거대 여당과 비교해 지나친 수적 열세의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서 당이 물리적으로 분열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여당에 맞서기 역부족인 만큼 모두 분열상황은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민주당이 다음 선거에서도 이길 거라고 큰 소리 치는 것은 보수가 탄핵과 관련해서 또 분열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며 “또다시 분열을 조장한다면 문재인 정권의 집권 연장을 돕게 될 뿐”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양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만큼 분열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대통령선거를 준비하고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에서 새로운 계파가 탄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과거에 관한 인식은 계파를 나누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