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타 제에거(45)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이 높은 콧대를 스스로 낮췄다. 한국에 R&D센터를 세우고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번 돈을 모두 본사로 보낸다는 비난에다 국내 수입차 판매량에서 3위로 밀려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인 마음잡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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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타 제에거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사장 |
제에거 사장은 지난 9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향후 2~3년에 걸쳐 7천만 유로(약 1023억 원)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디터 제체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발표한 내용을 거듭 확인해 준 것이다.
제어거 사장은 향후 한국에 설립될 R&D센터와 관련해 “연구개발 센터의 초기 투입 인력은 3∼7명 정도이겠지만, 향후 국제적 연구개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체 회장은 지난해 한국 방문에서 한국에 R&D 센터를 설립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뒤 인력이 5명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제어거 사장은 지난해 3월 한국에 취임했다. 그는 “지난해 아주 성공적 한 해를 보냈고 본사에서도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도 한국시장이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3년 동안 벤츠의 국내 판매 성적은 신통치 않다. 2000년대 이후 꾸준하게 수입차 판매량 1위 자리를 지키던 BMW와 격차가 더 벌어졌다. 2011년 둘의 판매량 격차는 BMW 2만3293대, 벤츠 판매량 1만9534대로 3939대 차이였다. 그러나 2013년엔 BMW 3만3066대, 벤츠 2만4780대로 격차가 8286대로 늘어났다.
2위 자리도 빼앗겼다. 2013년 폭스바겐의 판매량이 2만5649대로 벤츠를 물리치고 2위에 올랐다. 4위와 격차를 보면 더 불안하다. 4위를 차지한 아우디의 판매량은 2만44대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벤츠의 부진이 새로운 구매층으로 떠오른 20~30대 젊은층을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이 원금유예할부제도를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성향을 지닌 젊은층들이 수입차 시장으로 유입됐지만 벤츠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벤츠의 이미지 추락도 판매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싼 부품값과 동급의 경쟁모델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출시되는 벤츠만의 고가 정책도 소비자의 원성을 샀다.
게다가 본사로 가져가는 배당금의 규모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순이익 대비 배당금 비중은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08년 56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이 중 50%에 해당하는 28억 원을 독일 다임러 본사와 2대 주주인 스타오토홀딩스에 배당했다. 이어 2009년 당기순이익의 87%가 넘는 180억 원, 2010년 90%가 넘는 212억 원을 배당금으로 책정했다. 지식경제부가 조사한 외국인투자기업의 평균 배당성향인 35%보다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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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터 제체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서울 S-Class Arena에서 열린 The New S-Class 런칭 행사에서 신차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뉴시스> |
디터 제체 메르세데스-벤츠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것은 값비싼 차값, 고액배당, 판매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츠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메르세데스-벤츠 승용 부문에서 세계 13위의 시장이다. 그러나 고가의 E클래스와 S클래스의 경우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팔린 나라다. 제체 회장으로선 한국 시장에서 벤츠의 위상을 올릴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제체 회장은 한국을 방문해 메르세데스 벤츠 R&D연구소를 한국에 설치하고 부품 물류센터를 완공하고 메르세데스 벤츠의 사회공헌기금 조성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Korea 2020’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번 돈을 한국에 재투자하고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히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에 R&D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자동차를 개발해 한국시장과 세계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R&D코리아센터의 인력이 5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색내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벤츠코리아 내 소규모 사업부로 출발하는 만큼 그 위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