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해운 물류대란 사태와 관련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조 회장은 사재 400억 원 출연 약속은 지켰지만 대한항공을 통해 600억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은 이사회에서 결론을 보지 못해 실현이 불투명해졌다.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에 박근혜 대통령마저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상황이어서 조 회장으로서 또 다른 대응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대한항공 이사회는 18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미국 롱비치터미널 지분을 담보로 600억 원을 한진해운에 대여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롱비치터미널을 담보로 제공할 경우 한진해운이 이미 담보대출을 받은 6개 해외 금융기관과 또 다른 대주주인 스위스 해운사 MSC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점과 배임 가능성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롱비치터미널을 담보로 한진해운을 지원하려던 계획이 사실상 물거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대응책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정부와 한진해운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한진해운 보유의 컨테이너선 97척 가운데 하역작업을 하지 못해 바다에 대기 중이거나 가압류에 들어간 관리대상 선박은 34척으로 파악된다.
이 선박의 하역비용은 최소 1730억 원으로 추산되고 하역과정에서 발생할 추가 비용까지 포함할 경 2천억~3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한진해운이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인데도 정부와 채권단이 조양호 회장 등 대주주와 한진그룹의 책임론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수십 척의 선박이 입항을 거부당하고 하역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한진해운과 화주 사이 계약에서 비롯된 상거래채권인 만큼 그 비용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조 회장이 400억 원, 최은영 유수홀딩스회장이 100억 원 등 한진해운 전 경영진이 지금까지 500억 원의 긴급 자금을 수혈했다. 하지만 대한항공 지원금 600억 원을 포함해 1천억 원을 지원해도 물류대란 해소에는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비판도 컸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한진해운을 직접 거명하며 물류사태 책임론을 제기한 점도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대통령까지 물류대란 사태에 대해 대주주가 책임질 것을 공개석상에서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13일 “한진해운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적인 노력이 매우 미흡했다”고 지적하며 “기업이 회생 절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식의 기업 운영방식은 결코 묵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조 회장이 또 다른 카드를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한진과 한진칼 보유주식을 담보로 400억 원을 빌려 내놓은 만큼 사재를 더 내놓기도 어렵다. 추가 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자칫 대한항공 경영권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조만간 이사회를 열고 이해관계자가 많은 롱비치터미널 대신 한진해운이 소유한 다른 자산을 담보로 취득하고 자금을 대여하는 방식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담보로 잡을 만한 한진해운 보유자산이 사실상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이 높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