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최악의 원전 사고이기도 했지만 원전 안전을 향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체르노빌 이후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기술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원전 안전기준 역시 높아졌다. 그럼에도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필적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도쿄전력이 해수 주입을 망설이는 등 미흡한 대처에서 발생한 ‘인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원전 자체의 안전성에 많은 연구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후쿠시마는 체르노빌과 비교가 되지 않는 첨단 원자력발전소였다.
결국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 설비라는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닌 원전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의 문제였던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최근 한빛1호기 사태와 관련해 체르노빌이 아닌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수원은 사고 발생 이후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원전은 체르노빌과 다르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원전의 안전성’을 설득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원전 출력이 기준치인 5%를 넘어 18%까지 오르기는 했지만 어차피 출력이 25%가 되면 자동 정지하게끔 돼 있다는 것이다. 또 체르노빌과 냉각재가 다르고 방호 수준 역시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드웨어적 안전'일 뿐이다. 이번 사태에 우려가 나오는 것은 원전을 책임지는 한수원의 운영에 구멍이 뚫린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무면허 인원이 제어봉을 조작한 점과 이를 곧바로 인지하지 못한 점, 정지기준 지침을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점, 이상 발생 12시간이 지나서야 원자로를 수동정지한 점 등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한수원은 이러한 '소프트웨어적 안전'을 향한 우려는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책임자를 보직해임하고 실수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재발을 방지할지 근본대책과 관련한 발언 역시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하드웨어의 안전을 강조한들 원전 안전을 향한 신뢰가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한수원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국내 원전의 하드웨어 안전은 충분히 확보되고 있다. 관측 이래 최대였던 규모 5.8의 경주 지진에도 안전성이 확인됐고 이후에도 꾸준한 설비투자로 원전 안전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안전이다. 원전 안전운영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국내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의 17.4%인 52건이 인적 실수에서 나왔다.
평상시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큰 위기 때는 한순간의 오판과 실수가 대형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인적 실수 비중 17.4%는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들은 한수원에 원전 운영을 오롯이 맡기고 있다. 다른 누구도 대신할 주체가 없다.
장비와 시설은 바꾸고 성능을 개선하면 된다. 그러나 운영주체가 한수원이라는 점은 결코 바뀌질 않는다.
한수원이 원전 안전성을 강화하고 설비안전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원전 안전을 향한 우려가 가시지 않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원자력발전에 반감을 품고 불안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수원이 그와 같은 발언에만 집중해 국민의 진정한 목소리와 마음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원전 신뢰 회복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이라도 한수원이 한빛1호기 사태를 향한 우려의 본질을 깨닫고 원전 안전을 완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으로 혁신하기를 기대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