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과 차별화된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금리동결 기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오고 있다.
올해 연준에서 통화긴축 정책을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별개로 물가상황 등 국내 요인에 방점을 두고 기준금리 수준을 결정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했기 때문이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기준금리를 상당기간 동결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2일 한국은행 안팎에 따르면 연준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상당기간 동결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총재는 2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올해 주요국들의 통화정책이 차별화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이 총재는 신년사를 통해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고물가에 대응해 한 방향으로 달려온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주요국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가운데 나라별로 정책이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망은 국내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던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국내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도 “우리 내부 여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정책을 결정할 여지가 커졌고 우리가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올해 경제상황은 물론 지난해 정책운용 성과에 대한 최종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고 말했다.
통화정책 운용의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이 총재는 연준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움직임을 보이더라도 이를 바로 뒤쫓지 않고 국내 기준금리를 상당기간 동결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국내 기준금리를 섣부르게 내렸다가 올해 4분기 이후 물가 목표치인 2%대에 이를 물가 상승률이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이번 신년사에서 물가가 둔화세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은 안심하기에 이르다며 경계심을 나타냈다.
이 총재는 “물가상승세의 둔화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원자재 가격 추이의 불확실성과 누적된 비용인상 압력 등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4년 통화신용정책 운용방향’에서 통화긴축 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 부동산 PF 문제로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오지만 물가에 줄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시장의 기대보다 인하 시점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 운용방향에서 통화긴축의 강도 및 지속기간을 물가 흐름과 함께 경기 상황,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면밀히 점검해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기조를 지속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장 11일에 예정된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하반기까지도 이러한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금융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인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높은 금리로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부동산 PF 부실이 현실화되고 있어 이러한 위험 요인들이 확산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조속히 인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가 물가에 줄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는 시장의 기대보다도 더 늦은 시기에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총재도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균형 있게 고려한 최적의 정책조합을 찾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신년사에서 “대내외 정책여건의 불확실성 요인을 세심히 살피면서 물가를 목표 수준으로 안착시키기 위한 통화긴축 기조의 지속기간과 최적 금리경로를 판단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