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지정학적 위기로 TSMC 인공지능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삼성전자가 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외 투자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반도체 생산공장. |
[비즈니스포스트] 미래 인공지능(AI) 기술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 TSMC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켜내고 있다는 해외 투자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경쟁사가 TSMC를 따라잡는 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 수율은 물론 지정학적 리스크에서도 분명한 약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8일 투자기관 래디컬벤쳐스 연구원의 기고문을 통해 “전 세계의 모든 첨단 인공지능 반도체를 제조하는 TSMC가 없다면 인공지능 기술 구현은 불가능하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와 AMD 등 시스템반도체 설계기업은 물론 구글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기업도 모두 TSMC에 인공지능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래디컬벤쳐스는 7나노와 4나노 등 현재 출시되는 인공지능 반도체에 주로 쓰이는 미세공정 기술이 TSMC와 삼성전자, 인텔 등 3개 업체에서만 활용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인공지능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은 TSMC 한 곳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반도체 파운드리사업 특성상 최상위 기업이 대부분의 성과를 독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TSMC가 절대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래디컬벤쳐스는 TSMC가 이러한 시장 지배력을 통해 거두는 막대한 이익을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에 활용하며 선두를 더욱 굳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바라봤다.
TSMC가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400억 달러(약 53조 원)를 들여 4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공장을 신설하기로 한 점이 더욱 주목받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첨단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위해 TSMC의 대규모 공장 유치가 필수적인데 TSMC도 대만 공장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래디컬벤쳐스는 TSMC의 미국 파운드리 투자가 인공지능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을 통해 업계 전반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현지에 대부분의 첨단 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TSMC의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래디컬벤쳐스는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전면에 등장해 인공지능 반도체 제조를 담당할 만한 기업은 삼성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현재 TSMC와 더불어 3나노 미세공정 반도체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냈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공정에 쓰이는 웨이퍼 이미지. |
그러나 래디컬벤쳐스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파운드리 품질이 TSMC와 비교해 매우 뒤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도체 생산 수율 등 측면에서 현저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래디컬벤쳐스는 삼성전자의 3나노 반도체 수율이 10~20% 수준으로 TSMC의 80%와 비교해 크게 미달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추정치의 구체적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엔비디아가 최근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 반도체뿐 아니라 비교적 사양이 낮은 반도체 위탁생산도 모두 삼성전자에서 TSMC로 이동했다는 점이 정황상 근거로 제시됐다.
삼성전자 역시 대부분의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한국에 두고 있어 서방 국가의 관점에서는 TSMC와 마찬가지로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한반도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반면 핵심 동맹국인 미국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중국의 대만 침공과 같은 리스크에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다.
래디컬벤쳐스는 최근 파운드리사업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 인텔에는 상대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만약 TSMC의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미국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 반도체기업과 인텔의 협력을 주선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TSMC의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반도체 가격이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결국 전 세계 IT기업들이 첨단 미세공정 기반의 인공지능 반도체 대신 구형 반도체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을 구현하려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시됐다.
래디컬벤쳐스는 삼성전자와 글로벌파운드리 등 기업이 이런 상황에서 구형 반도체 공급을 확대하며 반사이익을 보게 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구형 반도체를 활용하면 비용 효율과 기술 발전 시간, 탄소배출량 감축 등 측면에서 많은 약점을 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졌다.
래디컬벤쳐스는 “현재 중국과 대만 사이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인공지능 반도체의 생산 차질은 너무 현실성 높은 시나리오가 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