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마케터
10만여명에게 날벼락이 떨어진 것은 지난 27일 아침이었다
. 평소처럼 출근했다가 졸지에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사실과 맞닥뜨린 것이다
. 전화
, 휴대전화 문자 서비스
, e메일 등을 통한 비대면 영업 행위가 전면 금지됐기 때문이었다
.
그 며칠전 청와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했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큰 사고(개인정보 유출)가 발생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는 국민에게 피해가 없도록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한다. 전 금융회사를 상대로 철저히 조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
|
|
▲ 박근혜 대통령 |
박 대통령의 발언은 금융 당국 실무자와 교감 끝에 나온 원론적 발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금융 당국은 주말 동안 번개같이 작전에 돌입했고
, 개인정보 유출로 물의를 빚은 카드업체
3개와 전혀 무관한 보험업체 등의 비대면 영업 행위가 일순간 모두 멈춘 것이었다
.
카드업체, 보험사, 대부업체에 근무하는 텔레마케터는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용 형태는 그야말로 열악하다. 기본급이 없는 계약직으로, 이마저도 근로계약서 대신 위촉계약서를 쓰고 근무한다. 당연히 퇴직금도 없다. 영업 담당이기 때문에 수입은 전적으로 실적과 유지 수당에 의존한다.
텔레마케터는 주부 사원 비율이 대단히 높은 분야다. 남편이 실직 상태이거나 홀로 자녀를 부양하는 탓에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두달 수입이 끊기면 당장 생계에 엄청난 타격을 받는 이른바 한계에 다다른 계층이다.
최근 20대 텔레마케터도 많아졌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이리저리 취업이 순조롭지 않아 선뜻 취업이 가능한 텔레마케터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쉽사리 받아주는 곳이 없다 보니 몇몇 20대 청년에게 그나마 직장 모양새를 갖춘 곳으로 여겨진다.
금융위원회는 텔레마케팅 영업 금지 조치가 3월까지 한시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편으로 “상황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어 “영업이 중단되더라도 업계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텔레마케터들은 심정은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업체와 텔레마케터들은 몇달 동안 막연하게 버틸 수만은 없다고 반발했다. 생계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나섰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매몰찬 내용이었다. 금융 당국은 “텔레마케터가 부분 허용된 다른 금융 기관으로 이직하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도록 하라”는 답신을 보냈다. 일을 끊은 후에 이직마저 가로막은 형국이다.
카드업체 세곳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이들 업체에 있고, 최종 책임은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한 정부에게 있다.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카드업체는 3개월 영업 정지 조치를 받은 게 고작이었다. 업체의 경영진과 정부 주무부처 담당자들은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로 야기된 이번 사태에서 오히려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은 10만명에 달하는 텔레마케터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생계형 직장인들이 범법자인양 취급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자리 창출은 못할 지언정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빼앗는 짓은 결코 ‘창조경제’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