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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추정' 적용되지 않는 금융사, 인수합병과 신사업 속앓이 깊다

최석철 기자 esdolsoi@businesspost.co.kr 2019-06-17 15: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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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추정의 원칙’은 검찰수사를 받는 피의자나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권에서는 인수합병 및 신사업 추진을 앞둔 금융회사들이 검찰고발 등으로 금융당국의 승인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잇달아 나오면서 사실상 금융회사에게는 ‘유죄 추정’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무죄 추정' 적용되지 않는 금융사, 인수합병과 신사업 속앓이 깊다
▲ 법원의 판결봉 모습. < pixabay>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돈’을 다루는 곳인 만큼 건전성 및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일반 회사보다 도덕성과 투명성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높은 수준을 요구받는다.

은행업 감독규정에 ‘형사 소송절차가 진행되고 있거나 금융위, 공정위, 국세청, 검찰청, 금감원 등에 의한 조사 및 검사 등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면’ 대주주 적격성 심사 절차를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 이유다.

위법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면 그 판결에 따라 대주주가 금융회사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대주주가 검찰에 고발당하거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대상에만 올라도 실제 혐의 여부와 관계없이 금융회사들은 인수합병 및 신사업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 사례는 한앤컴퍼니의 롯데카드 인수 무산이다. 

한앤컴퍼니는 롯데카드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지만 인수가격이나 고용승계 등의 인수 조건이 아닌 KT 새노조가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를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데 발목이 잡혔다.

한앤컴퍼니는 KT 새노조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며 해명했지만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금융당국이 검찰수사를 이유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미룰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거래가 무산됐다

이 밖에 공정위가 미래에셋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2년 가까이 조사하면서 미래에셋대우의 발행어음 사업자 인가는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하나금융지주가 2017년 9월 인수하기로 했던 하나UBS자산운용도 금감원의 승인을 받지 못한 채 2년 가까이 연기되고 있다.

은행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을 대상으로 한 검찰수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수사는 현재 별다른 진척없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상인이 골든브릿지증권 인수하는 데도 1년여가 걸렸다.

유준원 상상인 대표가 검찰의 불공정거래 조사대상에 올랐기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검찰이 유 대표에게 무혐의로 결론을 내린 뒤에야 인수승인이 이뤄졌다.

케이뱅크는 공정위의 KT ‘담합 혐의’ 조사로 발목이 잡혀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중단돼 제때 자본확충을 하지 못한 채 사업 자체에 위협을 받고 있다.

현행법상 금융회사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3개월 동안 진행되지만 1년에서 2년 넘게 진행되는 검찰수사 및 공정위 조사 등으로 금융회사들의 기다림은 길어지고 있는 셈이다.

금감원이 명확하게 인수 승인 심사가 미뤄지는 사유를 금융회사에게 통보하지 않는 사례도 많아 추측만 할 뿐 정확한 영문도 모른 채 심사일정을 기다리는 금융회사들도 있다.

금융당국이 최대주주의 위반 사항을 놓고 경미하다고 판단하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도 있지만 현실에서 적용된 사례는 거의 없다. 각종 특혜 의혹에 휩싸일 여지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약 누군가가 악의적 의도로 대주주를 향한 고발을 넣는다고 해도 금융당국의 이런 소극적 행태로는 걸러내기 힘들다는 말도 나온다.

물론 위법혐의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면 사법기관도 위법혐의를 두고 있는 데다 금융회사들도 의견을 적극 개진해 소명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는 만큼 심사가 중단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검찰수사와 공정위 조사는 사법기관의 1차적 판단도 나오지 않은 데다 금융회사로선 소명할 기회도 없이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수사 및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금융회사는 수사기관에게 미운 털이 박힐까봐 몸을 사린 채 애태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기간에 금융회사들은 미리 세워뒀던 사업계획에는 차질을 빚어질 수밖에 없는 데다 ‘문제 있는 회사’ 혹은 ‘꼬리표’가 붙어다니게 된다. 사실상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는 셈이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 정치권에서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과정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기간을 최근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위법사항도 ‘중대 범죄’로 제한하는 등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도 금감원의 인허가 심사가 정해진 기한보다 지연되면 그 사유를 보고하도록 하는 등 금융회사의 인허가 심사에 속도를 내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금융회사들이 잇달아 대주주 적격성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움츠러들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금융회사에게 건전성과 안전성은 핵심덕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죄 추정’의 대상이 되서는 안 된다는 뜻도 엿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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