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한국을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조치의 예외국에서 제외한다면 한화토탈이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사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 권혁웅 한화토탈 대표이사 사장.
콘덴세이트는 한화토탈의 화학·정유사업에 꼭 필요한 원료다.
4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한화토탈이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계속해서 사들일 수 있을지 여부가 앞으로 한 달 뒤에 확정된다.
5월4일이면 미국이 2018년 11월5일 이란 경제제재를 시작하며 한국에 부여했던 6개월 동안의 제재조치 예외국 인정자격이 끝난다.
권 사장은 마음을 졸이며 한국이 이란 경제제재의 예외국 자격을 다시 인정받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화토탈은 일반적 정유사와 달리 원유 정제시설이 없다.
대신 원유 정제설비보다 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스플리터라는 설비를 이용해 콘덴세이트에서 화학제품의 원재료 나프타를 추출한다. 이 과정에서 휘발유, 등유, 경유 등의 석유제품을 함께 생산해 정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콘덴세이트가 없다면 한화토탈은 정유사업을 진행할 수 없고 화학사업에도 차질이 생기는 셈이다.
따라서 권 사장은 한국이 이란산 원유를 수입할 수 없게 된다면 다른 나라로부터 콘덴세이트를 사들이는 쪽으로 거래선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는 콘덴세이트의 수익성이 이란산보다 크게 낮다는 점이다.
이란산 콘덴세이트의 나프타 함유량은 70~80% 수준이다. 미국이나 카타르 등 다른 나라들이 생산하는 콘덴세이트는 나프타 함량이 50% 정도로 이란산의 품질이 확연히 좋다.
하지만 가격은 이란산 콘덴세이트가 훨씬 싸다. 심지어 나프타 함량으로만 따지면 20% 수준에 그치는 중동국가들의 일반 원유보다도 가격이 저렴하다.
때문에 한화토탈뿐 아니라 콘덴세이트를 취급하는 모든 정유사들은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선호한다. 2018년 1분기 기준으로 국내 콘덴세이트 수입량의 51%가 이란산 콘덴세이트였다.
권 사장은 수익이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사들이는 나프타를 늘리고 콘덴세이트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전략을 선택하기도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올해 8월이면 한화토탈이 알뜰주유소 1100여곳에 휘발유를 판매하는 2부 공급자 계약이 끝난다. 그 전에 다음 공급자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한화토탈이 콘덴세이트 없이는 휘발유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콘덴세이트 사용을 줄이는 선택은 휘발유 판매를 줄이겠다는 말과도 같다. 충분한 휘발유 생산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입찰 과정에서 한화토탈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권 사장은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에 대비해 나름의 대처를 해왔다.
지난해 10월 한화토탈 대표이사에 오르자마자 미국산과 카타르산 콘덴세이트의 수입량을 늘리면서 이란산 콘덴세이트의 수입 비중을 낮추기 위해 힘을 쏟았다. 하지만 수익성 보전은 쉽지 않았다.
▲ 한화토탈 대산공장. <한화토탈>
이 때문에 권 사장은 한국이 제재 예외대상 선정됐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이란산 콘덴세이트의 수입 재개절차를 밟았다.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입을 재개하는 절차가 지연되자 지난 1월 권 사장은 러시아산 콘덴세이트 7만4천 톤을 수입해 품질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권 사장이 러시아산 콘덴세이트까지 도입을 시도한 것은 미국산과 카타르산 콘덴세이트만으로는 이란산 콘덴세이트의 수익성을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이 이란 제재의 예외대상 자격을 이어갈 수 있다면 권 사장의 고민은 해결된다. 하지만 상황은 권 사장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2월 브라이언 훅 미국 국무부 대이란 특별대표는 외신들과 인터뷰에서 이란 경제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더 이상 예외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3월28일 윤강현 경제외교조정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한국 정부 협상단이 미국 정부 대표단을 만나 한국의 예외국 인정자격 유지를 요청했지만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4월1일 로이터 등 외신은 훅 특별대표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Zeroing) 속도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화토탈의 실적 감소를 고려하면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계속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권 사장의 속은 더욱 타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화토탈은 2018년 영업이익 1조627억 원을 거둬 2017년보다 영업이익이 29.9% 줄었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한국이 이란 제재의 예외대상 자격을 이어갈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콘덴세이트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전략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나프타 함량과 가격 문제를 감안하면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