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강남구가 유독 전세 한파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값이 비싼 강남구는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이 낮아도 고금리 상황에서 대출이자 부담이 크다. 올해 대규모 입주물량이 대기하고 있어 ‘공급폭탄’이 예상되는 등 전세가격 하락요인이 겹치면서 전세가가 직전보다 수억 원씩 떨어진 거래가 계속 나오고 있다.
▲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강남에서도 전세가격이 직전보다 수억 원씩 떨어진 거래가 계속 나오고 있다. 사진은 개포자이프레지던스 단지 모습. <연합뉴스>
27일 KB부동산 주택가격동향조사의 월간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를 살펴보면 3월 서울 강남구 전세가격지수는 81.628로 서울 25개 구 가운데 두 번째로 낮다. 강남3구에 속하는 송파구(80.434)보다 조금 앞서면서 꼴등을 면했다.
KB부동산의 전세가격지수는 2022년 1월을 기준시점으로 이 때와 비교해 현재 가격비율을 산정한 것이다.
서울 강남구 전세가격지수는 올해 1월 80선으로 내려온 뒤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올해 1월 88.019와 비교해도 지수가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아파트실거래가(아실) 앱 자료를 봐도 2023년 3월20일 기준 최근 1년 동안 서울 강남구 아파트의 전세 가격은 18.1% 하락했다. 송파구(-19.4%)에 이어 서울 25개 구 가운데 두 번째로 전세가격이 많이 내렸다.
강남구는 올해 1분기 전세 하락거래 비율만 놓고보면 서울에서 가장 높았다.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강남구 전세계약 건수 가운데 지난해 4분기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 건수는 74.5%로 서울 전체 전세 하락거래 비율(67.3%)을 웃돌았다.
서울 최고 학군지로 강남에서도 ‘맹모(孟母)’들의 전세 수요가 많다는 대치동에서도 올해 3월 전세 갱신계약의 절반 이상(53.5%)이 하락거래였다. 대치동은 2월에도 전세 갱신계약의 49%가 하락거래였는데 그 비중이 더 늘어나고 있다.
준신축에 속하는 1608세대 대단지 래미안대치팰리스는 올해 3월 전용면적 84.98㎡ 전세가 14억5천만 원에 계약됐다. 이 매물은 기존 전세보증금 20억 원에 계약했었는데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사용해 다시 계약을 맺으면서 전세보증금이 5억5천만 원 낮아졌다.
래미안대치팰리스는 2월10일에도 전용면적 84.98㎡이 전세보증금 14억 원으로 갱신계약을 맺었다. 기존 전세 19억 원에서 5억 원이 하락한 거래다.
2017년 6월 입주한 대치SK뷰 아파트 전세가격 상황도 비슷하다.
대치SK뷰 아파트 전용면적 84.38㎡는 2월 기존 전세보증금(20억 원)에서 7억 원 하락한 13억 원에 갱신계약이 이뤄졌다. 2월 같은 면적 매물의 신규 전세계약 가격도 13억 원이었다.
2022년 중순만 해도 전세가격이 21억 원까지 갔었던 것과 비교하면 시세가 수억 원 내린 셈이다.
연식이 오래되고 재건축 추진 등으로 애초 전세가격이 낮은 아파트들도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1979년 준공된 은마아파트는 3월 거래된 전용면적 84.43㎡ 전세가격이 6억 원대에 형성돼 있다.
3월24일 갱신요구권을 사용한 84.43㎡ 전세계약은 기존 보증금 9억3천만 원이었는데 이번에 6억 원에 2025년 7월까지 계약을 갱신했다. 6일 재계약한 84.43㎡ 집도 전세보증금이 기존 8억8천만 원에서 6억8천만 원으로 2억 원 낮아졌다.
2월에도 같은 면적 전세가 기존 8억 원에서 6억5천만 원, 9억 원에서 5억5천만 원으로 가격을 내려 다시 계약됐다.
강남구 개포동도 전세가격이 큰 폭으로 내렸다. 올해 3월 개포자이프레지던스 3375세대 입주물량이 쏟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인근의 개포래미안포레스트는 3월 전용면적 59.92㎡ 전세가 8억 원에 갱신계약을 했다. 기존 전세보증금 10억3천만 원에서 2억3천만 원이 빠졌다.
개포래미안포레스트는 2020년 입주한 신축 아파트로 1년 전인 2022년 3~4월만 해도 전용면적 59.92㎡ 전세가격이 10억 원 중후반대에서 11억 원 사이를 보였다.
개포디에이치아너힐즈는 올해 3월 기준 전용면적 59㎡ 전세가격이 8억~8억5천만 원 수준이다. 전세가격이 최고가를 보였던 2022년 3월 13억7천만 원과 비교하면 5억 원가량이 하락했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는 현재 전용면적 39.94㎡ 전세매물이 5억 원대부터 나와있다. 소형면적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강남, 대단지, 1군 브랜드 신축 아파트에 5억 원대에 거주할 수 있는 셈이다.
강남구와 같은 ‘부자동네’는 애초 아파트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격차가 크다.
매매가격에서 미래 집값 상승가치가 차지하는 부분이 높기 때문이다. 전세가격은 현재 사용가치(거주가치)이다 보니 집값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강남구는 항상 서울 다른 구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이 낮았다.
당장 위에 언급된 래미안대치팰리스도 매매가격은 28억~29억 원으로 전세가율이 50%가 안 된다. 은마아파트 84.43㎡도 현재 전세가격이 6억 원대인데 매매가격은 22억 원대다.
지난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13차 아파트 전용면적 108.47㎡는 37억 원에 거래되면서 최고가를 갱신했는데 이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7억 원 초반대다.
서울 아파트 전세거래에서 4억 원 이하 거래가 늘어나고 고가 아파트 전세거래가 줄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남 아파트 전세가격 하락세가 더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1분기 서울 아파트 전세거래 2만9668건 가운데 보증금 4억 원 이하 거래 비중이 45.5%으로 2022년 4분기보다 7.8%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6억 원 초과~9억 원 이하 아파트 전세거래는 16.7%, 9억 원 초과 아파트 전세거래는 6%로 각각 지난해 4분기보다 4.3%포인트, 4.2%포인트 줄었다.
강남구, 서초구는 올해 입주물량도 많다. 3월 개포자이프레지던스(3375세대)를 시작으로 8월 서초구 반포동에서 래미안원베일리(2990세대)가, 11월 강남구 개포동에서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6702세대)가 입주한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