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2016년을 ‘위기의 해’로 본다.
재계 총수들이 내놓은 신년사를 보면 ‘위기 의식’이 곳곳에 배어난다. 이들은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지 못하면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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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윈 알리바바 회장. |
일리 있는 진단이다.
하지만 정작 더 큰 위기는 외부가 아닌 우리 사회 내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꿈과 희망, 그리고 도전이라는 단어가 듣기 힘든 말이 돼 버렸다. 미래 사회를 이끌고 갈 청년들은 물론이고 기업가 도전으로 무장해야 할 기업들도 꿈이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됐다.
4일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한국과 중국의 대표 부자 50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국은 50명 가운데 창업자가 49명인 반면 한국은 12명에 불과했다. 중국은 단 1명만이 상속자인데 비해 한국은 38명이 ‘부모를 잘 만나’ 부자가 됐다.
중국은 알리바바의 마윈(2위), 텐센트의 마화텅(3위), 바이두의 리옌훙(6위) 등 ‘인터넷 3인방’을 비롯해 샤오미의 레이쥔(4위) 등 자수성가한 최고경영자(CEO)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한국은 이건희 이재용 이재현 이명희 등 범삼성가 7명, 정몽구 정의선 정몽준 등 범현대가 5명 등 재벌 2~3세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미국의 경제정보 미디어 블룸버그도 최근 비슷한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블룸버그가 2015년 12월31일을 기준으로 조사한 세계 400대 부자 목록에 따르면 이 명단에 오른 한국인 5명은 모두 부의 원천이 상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중국은 명단에 이름을 올린 29명 가운데 28명, 일본은 5명 모두 창업해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이었다.
특히 세계 10대 부호들은 모두 창업 스토리를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킨 창업자들이었다.
마이크로 소프트(MS)의 빌 게이츠(1위), 패션 브랜드 ‘자라(ZARA)'로 유명한 인디텍스의 아만시오 오르테가(2위), 세계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8위) 등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혁신형 기업 창업자들이 세계 최대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최근 사교육을 받는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공무원, 교사, 공학기술자, 의사, 회사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창업을 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극히 낮았다. 도전이나 모험을 피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편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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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
이런 결과는 일부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된 한국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무관치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벤처기업 관계자는 “골목상권까지 넘볼 정도로 탐욕적인 재벌은 시장의 거의 모든 분야를 점령해 신생•벤처기업이 살아남기 힘들다”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성공확률이 낮으니 학생과 청년들은 창업을 포기한 채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대기업 문만 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한국의 기업 생태계는 갈수록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꿈과 의지가 있는 젊은이를 지원하는 기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가 지금이라도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젊은이들이 창의성을 기르고 마음놓고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과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패자부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며 “이런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신흥 부자도 나오고 한국 경제도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