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기반기금의 활용은 국회 동의없이 정부의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시행령 개정에 따른 야당의 반발로 정작 한국전력이 희망하는 한전공대 특별법의 국회 통과 과정이 험난해 질 수 있다.
8일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전력산업기반기금 폐지 또는 전력산업기반기금 운영심의위원회 설립 등의 방향으로 전기사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2001년 한국전력 민영화를 핵심으로 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당시 신설됐다.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 등이 주된 사용처로 정해져 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매달 국민과 기업이 납부하는 전기요금에서 3.7%씩 떼어 별도로 적립한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약 5조2천억 원가량이 적립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구 의원은 정부가 사실상 모든 국민이 내는 ‘준조세’에 해당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한전공대 설립 비용 마련 등 기금 목적과는 다른 곳에 정부가 사용하고자 한다고 비판한다.
구 의원은 전기사업법 개정을 준비하면서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와 경제위기로 국민의 시름이 깊어져 가는 상황에서 기금을 폐지해 준조세 하나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폐지가 어렵다면 정부 정책에 따라 특정 사업에 기금이 사용되는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해 심의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자근 의원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법 개정을 위한 초안은 준비가 됐다”며 “다만 전력산업기반기금 폐지까지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여러 의견을 듣기 위해 공청회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20대 국회 때부터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한전공대 설립 재원으로 사용하는 데 반대해왔다.
20대 국회 때 곽대훈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한전공대 설립·운영을 막는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 법률안’과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대학 설립 또는 운영과 관련한 사업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 등을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들은 20대 국회의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한국전력은 한전공대 설립과 운영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사용이 절실하다.
한전공대는 설립비용에만 최소 6천억 원, 2031년까지 운영하는데 약 1조6천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의힘의 반대 움직임에도 한국전력이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한전공대 설립 재원으로 사용하는 일은 가능해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전공대 설립에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사용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사용범위를 ‘공공기관 출연 학교법인이 설립·운영하는 대학’으로 확대하는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 법제처에서 시행령의 심사를 받고 있으며 올해 말 국무회의 의결 등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야당과 전력산업기반기금의 활용을 두고 마찰을 빚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은 한전공대 특별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기 위해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
한전공대 특별법은 2022년까지 한전공대를 정상적으로 개교하기 위해 대학 운영에 필요한 법적 지위와 국가재정 지원의 근거를 담았다.
한국전력은 전라남도와 함께 법무법인 세종에 용역을 줘서 한전공대 특별법 초안을 마련해뒀다. 현재 주관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다른 법령과 위배 요소를 검토하고 있다.
한전공대 특별법이 정부 입법으로 추진될 지,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원입법으로 추진할 지도 논의되고 있다. 신정훈 의원은 한전공대가 들어설 나주를 지역구로 뒀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한전공대 설립과 운영 재원을 마련하려다 자칫 한전공대 설립과 운영에 꼭 필요한 법적 근거 마련이 험난해질 수 있어 한국전력으로서도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셈이다.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도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어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한전공대 설립 재원으로 활용하기를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김 사장은 “이 문제에 대해 특히 야당 의원들이 조금 더 이해되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