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왼쪽)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
벼락은 같은 곳에 두 번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틀린 말이라고 한다. 같은 장소에도 여러 번 벼락이 내리칠 수 있다는 게 과학적 정설이다.
대한항공은 오너 일가에게 두 번이나 날벼락을 맞았다.
조양호 회장의 큰딸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잠잠해질만하니 이번엔 둘째딸
조현민 전무의 광고대행사 직원을 상대로 한 ‘물벼락’ 사건이 터졌다.
조현민 전무가 SNS에 사과를 한 데 이어 해외에서 휴가를 마치고 귀국해 또 다시 사과를 했지만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조현민 전무가 직원을 상대로 욕설과 고함을 퍼붓는 정황이 포착된 음성파일까지 공개되면서 여론의 분노 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슈퍼갑’
조현민 전무의 ‘을’을 향한 갑횡포가 그의 말처럼 “광고에 대한 열정에 비롯된 잘못”이 아니었음을 누구라도 짐작하게 할 만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뿌리깊게 박힌 고질적 ‘금수저’ 의식에서 비롯된 삐뚤어진 일탈이란 사실이 드러났단 얘기다. 광고업계에서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땅콩회항’ 당시 국민적 분노는
조현아 사장이 직원의 서비스를 나무라며 단지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안하무인으로 머슴 부리듯 기장에게 하대를 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비행기가 이륙을 앞둔 상황에서 아무리 오너일가라 해도 탑승자 신분에 불과한 이가 회항 지시를 내린 것은 항공법을 위반하는 중대 범죄였다. 수백 명의 탑승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조현아 사장은 초췌한 모습을 드러내며 국민 앞에 사과를 했음에도 결국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조양호 회장 역시 자식 잘못 키운 죄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던 건 물론이다.
조현민 전무의 이번 사안도 경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만큼 법적 처벌을 받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조 전무는 대기업 최연소 임원으로 일찌감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한진가 3세로 대한항공의 광고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내가 사랑한 유럽' 시리즈 등 기업 이미지 광고로 대중들에게 호감도가 급상승했는데 정작 기업 이미지 광고를 담당하는
조현민 전무가 그런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면 이는 도덕적 책임을 넘어 배임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다.
재벌 3~4세의 경영권 승계를 놓고 어느 때보다 눈높이가 높아진 시점이다. 촛불혁명도 따지고 보면 고질적 정경유착으로 촉발된 면이 크다. 과거에 관행이었다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적폐청산의 요구가 도처에서 일고 있다.
조현민 전무의 이번 사건은 한진그룹을 대표하는 대한항공이 오너일가의 잘못과 그에 따른 기업의 위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현아 사장은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에 복귀했다. 사과했고 처벌도 받았으며 자숙의 시간도 거쳤으니 이제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인 셈이다.
조현민 전무는 직원 이메일을 통한 사과에서 잘못을 인정하며 도의적 책임은 물론 법적 처벌도 감수하겠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번 ‘물벼락’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떠들썩했던 여론이 잠잠해질 테고 그러다 적당한 수위에서 처벌을 받고 다시 경영에 복귀하면 그만이란 인식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땅콩회항’ 사건을 겪고도
조현아 사장이 그랬듯이 말이다. 물론
조원태 사장도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너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대한항공의 위기 관리 능력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다.
조현민 전무의 첫 보도가 나오자 대한항공은 보도자료를 내고 “물컵을 바닥에 던져 물이 튄 것일 뿐”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내부 직원이 직접 녹취한 음성파일이 공개됐을 때는 “
조현민 전무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일 수 있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일단 떨어지는 벼락만 피하면 그만이란 식의 허술하고 안일한 대응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 항공사의 위기 관리 수준이다.
기업에 위기상황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오너 일가가 사실상 기업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국내 재벌기업에서 어떤 오너가 경영을 하느냐에 따라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흔히 위기관리에 세 단계가 있다고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위기를 부를 만한 요소를 먼저 예측해서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고 이에 실패해 대형위기가 찾아왔다 해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위기를 부른 당사자의 진정성 있는 반성이 있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최악은 똑같은 위기가 반복되는 것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면 “재발 방지에 최선” 운운하며 다짐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물벼락’ 사건은 ‘땅콩회항’에 이어 재발된 최악의 위기 관리 실패 사례란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과거의 위기로부터 배운 교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시쳇말로 '배운 게 1도 없다'는 얘기다. 재차 강조하자면 벼락은 같은 곳에 한 번도, 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내리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