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극단적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추구하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프랭크 팔리 미국 템플대학교 교수는 권력과 섹스스캔들의 연관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하는 호전적 성격이 이성과 관계에서도 권력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차세대 유력 대선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이 대한민국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즉각 사과하고 도지사를 내려놓았지만 충격을 가라앉히기에는 어림없다. 대중의 분노는 정치권 전체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허리 아래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말라”는 말로 남성 정치인에게 면죄부를 주던 시절이 있었다. 섹스스캔들은 정치인으로서 치명적 결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웅다정(英雄多情),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 사고는 “백제 의자왕이 3천 궁녀를 거느렸다”는 틀린 역사인식과 함께 이를 오히려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잘못까지 저질러왔다.
현대사만 봐도 한국 정치인들의 섹스 스캔들은 넘쳐난다.
여인들을 불러 벌인 술자리에서 총 맞아 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성편력은 유명하다. 그런 그가 여전히 일각에서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첫 손가락으로 꼽힌다는 점은 대한민국 사회가 남성의 여성학대에 어떻게 관대하게 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단면이다.
2013년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연찬회 자리에서 한 일간지 여기자의 허벅지를 만지며 성희롱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정치인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여성인턴 엉덩이를 움켜쥐며 성희롱한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친박단체를 중심으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사회는 안 전 지사가 진보정치인이라서 더 냉혹하다기보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더 엄격해졌다.
국민은 더 이상 무소불위 권능의 치외법권같은 특권층 정치인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본받을 만한 깨끗한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세 카차프 전 이스라엘 대통령은 10명의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아 2006년 퇴진했다. 2011년 허먼 케인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는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낙마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역시 미성년과 섹스 스캔들로 자리에서 쫓겨났다.
과거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을 모니카 르윈스키와 성추문사건에서 살려낸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였다.
남편을 용서한다는 힐러리의 발언은 성난 대중을 가라앉히는 동시에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에 힘입어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안은 1999년 부결됐다. 힐러리는 “남편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지만 아내로서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만약 20년이 지난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힐러리는 같은 선택을 했을지 그리고 대중은 그에 수긍해 클린턴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연장해줬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정치판을 떠난다면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영웅호색'은 더 이상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교훈으로 기록될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오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