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 한수원 사장이 추진해온 ‘원전 마피아와 전쟁’이 그 빛을 잃게 됐다. 원전비리 근절을 외치며 물갈이를 통해 임명한 이청구 부사장이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순혈주의 타파 인사에 흙탕물이 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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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 수사단은 11일 오전 서울 삼성동 한수원 본사에서 이청구 부사장의 사무실을 금품수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이 부사장 승진 두 달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부사장은 원전비리로 인한 한수원의 내부 혁신 의지를 담아 진행한 지난 1월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사장은 월성원전본부장으로 일하던 2009~2011년 부산의 P 원전부품업체로부터 납품청탁과 함께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월성본부에서 함께 일했던 부장과 차장 등 간부 4명을 같은 혐의로 긴급 체포하는 한편 이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P업체는 원자력발전소에 쓰이는 원자로 냉각재 펌프의 전동기 베어링을 한수원 등에 납품해 85억 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납품업체 대표와 임원은 지난 10일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과 중간 간부 조사 후 이 부사장을 소환한다. 검찰은 중간 간부 4명을 체포한 뒤 근무지인 월성원전과 울진`고리원전에서 각각 부산으로 압송해 조사하고 있다. 이 부사장 등은 현재 금품수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으로 조 사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원전 마피아'와 전쟁이 무색해지게 됐다. 조 사장은 원전비리의 주범으로 꼽혀온 한수원 내의 순혈주의를 타파하려고 노력해왔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12월19일 발표한 인사에서 외부 인물을 대거 영입했다.
조 사장은 외부에서 영입된 CEO다. 6대 김균섭 사장 취임 이전까지 한수원 사장은 내부 출신의 인사가 맡아 왔고, 5대 사장까지 모두 모회사인 한국전력 출신이었다. 조 사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하면서 "한수원 사장이 독(毒)이 든 성배가 아닌 종갓집 맏며느리의 자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심기일전 하겠다는 개혁의지를 보였다.
원전 마피아는 주로 학연으로 유착되어 고위직을 독식하며 납품 등의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관련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집단을 의미한다. 순혈주의는 원자력 전문가만이 한수원의 운영에 관여할 수 있다고 믿는 풍토를 의미한다. 마피와와 순혈주의는 모두 국내에 원자력 관련 교육 과정이 개설된 대학교가 9곳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
이 부사장도 원자력공학과를 나왔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으로 1977년 한전에 입사했으며 2001년 한수원이 한전에서 분리되면서 한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발전본부 방사선안전실장, 월성원자력본부 설비개설실장, 월성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장, 본사 발전처장, 월성원자력본부장 등을 역임했고 지난 1월 한수원 발전본부장 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한수원은 지난해 원전비리로 간부들은 물론 사장까지 줄줄이 구속되면서 ‘복마전’이란 오명이 붙었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상임이사 네 명 중 두 명을 해임됐고, 그 두 명을 대신해서 발탁된 인사가 바로 이 부사장이다.
공공기관 개혁은 박근혜 정부의 숙원사업 중 하나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4년도 업무보고에서 “한국경제가 더 멀리, 더 높이 도약하려면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먼저 공공부문부터 정상화 하겠다”고 말했다. 현 장관은 지난 8일 ‘2014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워크숍’에서도 “올해는 공공기관 정상화의 원년으로 경영평가단 역할이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하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