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균 삼성전자 IM부문 사장이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갤럭시S5’에 외신의 혹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깜짝 공개한 ‘기어핏’이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 사장으로서는 스마트폰에서 하드웨어 혁신은 거의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웨어러블에서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 셈이다.
신 사장은 지난 24일(현지시각)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014에서 갤럭시S5를 공개했다. 갤럭시S5는 삼성전자의 새로운 플래그십(flagship) 모델이다. 신 사장은 “사람들은 복잡한 기술을 원하지 않는다”며 신제품이 하드웨어적 혁신 보다는 소비자 편의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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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균 삼성전자 IM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24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컨벤션센터(CCIB)에서 개최된 '삼성 모바일 언팩 2014'에서 신제품 '갤럭시S5'를 공개했다. |
◆ 한계 맞은 고급화 전략...신 사장의 복잡한 속내
신 사장의 말처럼 갤럭시S5의 하드웨어는 전작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새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2배씩 늘어났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디스플레이와 메모리도 큰 발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나마 강화된 카메라 성능과 새로 추가된 심박 센서만이 유일하게 타사 제품에 비해 갖는 경쟁력이다. 지문인식과 방수 및 방진 기능은 이미 시장에 선보인 지 오래다.
신제품 공개 직후 외신들은 갤럭시S5에 대해 ‘기대 이하’라는 평을 내놨다.
미국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반짝하는 매력은 있지만 흔히 사용하지 않는 기능을 없애고 대신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역력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기본에 충실했지만 새로울 게 없었다”고 평가했고, USA투데이도 “전작에 비해 놀랄만한 혁신은 못 보여줬다”라고 했다.
이런 평가는 삼성전자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대가 높았는데 그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는 평가인 것이다. 그동안 갤럭시 제품군은 고급화 전략에 따라 항상 최고와 최신의 하드웨어를 장착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스마트폰 하드웨어 시장을 선도했다. 따라서 타사 제품보다 높은 스펙에 대한 기준이 적용돼왔던 것이다. 이번 갤럭시S5는 그 기준에 미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신 사장은 이런 외신의 평가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외신의 혹평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원래 그런 곳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신 사장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스마트폰 하드웨어 혁신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 경쟁을 포기하게 된다면 삼성전자는 고급화 전략 자체를 수정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신 사장의 고민은 삼성전자의 위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신 사장은 “현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고 표현했는데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이 굉장히 둔화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사장은 “선진국에서는 시장성장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신 사장의 말은 그만큼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축소됐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아직 스마트폰의 하드웨어 혁신 경쟁을 멈출 수 없는 형편이다. 아직까지는 스마트폰을 대체할 새로운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제품 공개 전인 지난 23일 신 사장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하드웨어 스펙 경쟁이 끝났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스펙 경쟁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게 중평이다. 신 사장 스스로도 갤럭시5S에 대해 스펙 대신 소비자 편의기능을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일정 기간 가격경쟁력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쪽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갤럭시S5의 하드웨어 혁신이 뚜렷하지 않은 만큼 전작보다 낮은 가격에 출시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기업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삼성전자로 하여금 이런 방향으로 선회하도록 이끌 것으로 보인다. 신 사장도 “중국기업의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얕잡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MWC에서 레노버나 화웨이, ZTE같은 기업들은 삼성전자의 제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신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 신 사장의 대안은 웨어러블 기기
신 사장이 이번 MWC에서 거둔 성과는 ‘기어핏’이다. 기어핏의 공개는 애초 예고되지 않았으나 발표 직후 갤럭시S5보다 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삼성전자가 드디어 웨어러블 기기에 대한 ‘감을 잡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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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신제품 '기어핏' |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기어핏은 우리가 그동안 기다려온 기기이자 삼성전자가 발표한 제품들 중 최고다”고 평가했다. 기즈모도 역시 삼성전자가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 새로운 무언가를 내놨다며 “기어핏은 훌륭한 기능과 디자인을 겸비한 제품”이라고 호평했다.
기어핏은 웨어러블 기기 최초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를 채용해 눈길을 끌었다. 먼저 공개된 갤럭시S5가 외형과 하드웨어 면에서 전작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또 같은 웨어러블 기기인 ‘갤럭시 기어’와 달리 날렵한 디자인을 채택해 두께와 무게를 모두 줄여 진정한 웨어러블 기기로서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작보다 스마트폰 없이 작동하는 독자적 기능을 많이 탑재한 것도 장점으로 지목됐다.
기어핏의 깜짝 공개는 신 사장의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신 사장은 그동안 올해를 웨어러블 기기 시대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3일 간담회에서도 “삼성전자가 웨어러블 기기의 개척자로 시장을 열겠다”고 말했다.
신 사장이 웨어러블 기기에 거는 기대는 스마트폰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그는 “올해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를 시장에 선보여 성과를 낼 생각”이라며 “기어시리즈가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MWC 발표 이후 신 사장은 자신의 손목에 직접 기어핏을 차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다만 신 사장은 웨어러블 기기에 대한 강조가 스마트폰 대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웨어러블 기기가 차세대 성장동력은 맞지만 아직 초기단계에 있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점진적으로 사업의 중심을 스마트폰에서 웨어러블 시장으로 옮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