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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파면, 여성지도자 실패 아니고 박근혜 실패다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7-03-10 14: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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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원론적인 의미에서 광고에서 사랑받는 3가지 대상으로 ‘3B’가 꼽힌다. ‘beauty(미인), baby(어린이), beast(동물)’를 일컫는 것이다.

과거에 비하면 덜하지만 뉴스가치에서도 이런 경향이 유지된다. 가령 같은 행위자라도 여성(꼭 미인이 아니더라도)인 경우 뉴스가치를 결정짓는 화제성이 훨씬 더 높은 법이다.

  박근혜 파면, 여성지도자 실패 아니고 박근혜 실패다  
▲ 박근혜 대통령.
2017년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비운의 영애’ ‘퍼스트레이디’ ‘선거의 여왕’ 등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 많던 화려한 수식어를 뒤로 한 채 말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역사적으로 남긴 의미는 한두 가지가 아닐 터다. 촛불시민의 혁명, 국민주권의 승리 등등 굳이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CNN은 박 대통령의 탄핵 관련 기사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단 한 줄로 표현했다. ‘PARK OUT.’

박 대통령의 ‘아웃’이 가져올 파장 가운데 우려되는 대목으로 그가 여성지도자로서 철저히 실패했다는 점만은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성+대통령’이란 조합만으로 뉴스가치의 정점을 찍었던 그는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수준을 넘어 엄청난 굴욕과 상실감마저 안겼다.

그를 지지했든 안했든 적어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그나마 한가닥 기대를 걸었던 대한민국의 여성을 보기 좋게 배반한 것만으로도 여성유권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할 일이다.

요즘 새 학기를 맞아 각급 학교마다 회장 선거가 한창이다. 똑똑하고 다부진 여학생들이 손을 들고 앞에 나가 당찬 목소리로 소신을 밝힌다. 장래 우리사회에 여성 리더로 자라날 아이들이다.

박 대통령의 실패는 장래 여성지도자를 꿈꾸는 이런 어린 여학생들에게까지도 좌절을 맛보게 한 셈이다.

그는 세월호 7시간 미스테리를 둘러싼 소문만으로도 ‘여혐’(여성혐오)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수백 명의 꽃 같은 목숨이 희생되는 순간에도 머리를 손질하는 데만 90분이나 허비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숱한 해외순방길에서도 화려한 의상으로 옷을 갈아입나 했더니 결국 최순실씨로부터 수천만 원의 옷값을 대납받은 것이었다. 사진이 찍힐 때마다 포토샵을 한 것도 아닌데 피부에 주름 하나없이 얼굴이 팽팽해졌다. 해외순방에서 머문 호텔의 변기까지 새로 갈아끼우도록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보도 가운데는 다 죽어가는 여성 대통령 권력을 물어뜯는 일부 언론의 선정성도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추문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 역시 박 대통령 본인이었다.

대통령 변호인이란 이가 온갖 의혹에 내놓은 해명은 고작 ‘여성의 사생활’ 운운이었다. 이런 추문들을 전하는 기사 댓글에는 ‘대한민국에서 향후 100년 동안은 여성 대통령이 절대 나올 수 없을 것’이라거나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여성혐오 혹은 비하하는 발언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 파면, 여성지도자 실패 아니고 박근혜 실패다  
▲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헤어롤을 풀지 못한채 출근하고 있다.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아침부터 단연 화제가 됐던 사진을 꼽으라면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헤어롤을 머리에 단 채 출근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 사진은 순식간에 SNS 등을 타고 전파되면서 헤어롤 2개가 붙어 탄핵인용에 필요한 숫자 ‘8’을 의미한다거나 인용의 ‘ㅇ’ 앞글자를 딴 것이라는 등 기발한 해석도 난무했다.

이 재판관은 대한민국 헌법의 수호자로서 상징성이 누구보다 큰 사람 가운데 한명이다. 근엄하게 선고문을 읽어 내린 이 재판관도 여성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이 중요한 날 평소보다 이른 출근길에도 차안에서나마 머리손질을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머리에 매단 헤어롤조차 잊었을 정도로 그의 머릿속은 온통 소임에만 쏠려있었음도 분명해 보인다. 우리사회 여성지도자 대다수는 이 재판관처럼 성실하고 소탈하고 그리고 일에 최선을 다해 몰두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최근 ‘세계 여성 정치 실록’이란 책이 출간됐다. 저자인 박영만씨는 이 책에서 세계 여성지도자 여러 명의 사례를 들며 아버지나 남편을 계승한 지도자 8명 가운데 통치에 성공한 확률은 8%에 불과했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자와할랄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 필리핀 상원의원 베니그노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의 2명을 제외하고 아르헨티나 이사벨 페론 등 후광을 입고 권력을 잡은 여성 지도자는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반면 마거릿 대처 총리(영국), 골다 메이어 총리(이스라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칠레),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스리랑카), 헬렌 클라크 총리(뉴질랜드) 등 8명의 사례를 들어 순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지도자에 오른 이들은 100%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단숨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으나 결국 최초의 탄핵 대통령으로 몰락한 박 대통령을 보자니 이런 분석이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릴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런 분석이 앞으로 여성 대통령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할 여성리더들에게 ‘양날의 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 대통령을 희화한 누드그림 논란이 일자 권은희 의원 등 8명의 여성의원들은 당시 이런 성명을 냈다.

"박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 자칫 여성대통령, 여성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성적 대상화 방식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 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박 대통령의 무능과 권력 비리인가, '여성' 대통령이라는 것에 대한 비하와 혐오인가.“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지 여성대통령이 아니라는 얘기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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