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에서 ‘중산층 70% 재건’을 공약했다. 이 공약을 위해 정부가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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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
정부는 14일 이달 말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모호한 중산층 기준을 보완하고 세분화한 보조지표를 개발해 발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해부터 기재부, 한국개발연구원 등으로 구성한 ‘중산층 기반강화 태스크포스(TF)’는 중산층의 새로운 기준을 연구하고 있다. TF는 우선 ‘다차원적 중산층 개념’을 도입하려고 한다.
TF는 소득 이외에 가구가 갖고 있는 ‘순자산’에 주목했다. 순자산은 금융자산,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으로, 현재 기초노령연금 산정 등에서 사용되는 방식이다. TF의 시뮬레이션 결과 순자산을 포함할 경우 중산층 기준이 되는 소득은 현행 4,251만원(4인 가구 기준)에서 1,400만원 정도 늘어난 5,600만원 안팎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기준대로라면 중산층 70% 재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우리 사회는 소득보다 순자산이 훨씬 불평등하게 배분돼 있다”며 “이 지표가 나오면 중산층 비중은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TF의 한 관계자도 “중산층 보조지표를 사용하면 중산층 70% 복원은 사라져야 하고 육성 내지 확대로 표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산층 70%'에 기준 맞추기
하지만 ‘70%’라는 숫자는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현행 OECD 기준 중산층 정의를 중심에 두고, 다차원적 중산층 개념을 ‘보조지표’로만 사용한다고 밝혔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난 해 8월 세제개편안 당시 일었던 중산층 개념에 대한 논란이 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통상적으로 쓰고 있는 ‘OECD 기준’은 지나치게 관대하다. 이는 단순 가계소득으로 줄을 세워 중위소득 50∼150%에 해당하는 가구 전체를 중산층으로 보기 때문이다. OECD 기준에 따르면, 중산층은 연소득이 2,126만∼6,377만원(2012년, 4인 가구 기준) 가구다. 이 기준에 따르면 4인 기준 월 소득이 180만원만 돼도 중산층이다. 그러나 사실 이는 올해 4인 가구 월 평균 최저생계비 163만원을 겨우 웃도는 저소득층에 속한다.
중산층 기준은 ‘세수 확보’에도 영향을 끼친다. 지난 해 8월 세제개편 당시, 애꿎은 ‘월급쟁이’의 유리지갑에만 타격을 준다는 비판이 거셌다. 정부는 근로소득세제 개편에서 ‘연소득 3,450만~5,500만원 사이 근로자’는 중산층이라고 정의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2008년 세제개편 때는 지금과 정반대의 논리를 제시했다. 당시 정부는 소득세율을 단계적으로 2%포인트 인하하면서 과세표준액 기준 8,800만원 이하를 중산층으로 잡았다. 정부는 이 논리에 따라 중산층도 감세혜택을 받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연소득 1억2,000만원’ 정도는 돼야 과표기준 8,800만원이 되기 때문에 ‘부자감세’라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을 받았다.
기획재정부는 일단 지난 해 세제개편 때 방침을 유지하면서 월급쟁이 중산층 과세에 더욱 무게를 실을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20일 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한다.
◆ 문화 등 정성적 기준도 중요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화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4일 내놓은 ‘2013년 사회조사’를 보면, 가구주의 소득•직업 등으로 고려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의식 조사에서 ‘상중하 세 계층 어디에 속하느냐”는 물음에 상층 1.9%, 중간층 51.4%, 하층 46.7%로 나타났다. 2011년과 비교해 보면 중간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1.4%포인트 감소하고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1.4%포인트 증가했다.
문제는 계층 간 이동의 문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가구주의 비율은 28.2%인 반면, 그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57.9%로 나타났다. 10명 중 6명은 한평생 노력해도 잘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산층은 여전히 ‘로망’이다. 한 인터넷의 직장인 상대 설문조사를 보면 중산층의 기준이 ‘부채 없이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월 급여 500만 원이상, 자동차 2000cc급 중형차 소유, 예금 잔액 1억 원 이상 보유, 해외여행 매년 1회 이상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중산층 기준을 정할 때 소득을 제외한 문화적 기준이 아직 약하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점에서 선진국의 기준을 참고할 만하다.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은 ‘외국어 하나 구사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며, 남다른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공분’에 의연히 참여하고 약자를 도우면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영국은 ‘페어플레이하고,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갖되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며 불의•불평•불법에 의연히 대처’해야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미국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약자를 도우며, 불의에 저항하고, 정기적인 비평지 구독하는 자’를 중산층으로 분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