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경제민주화 법안의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삼성그룹보다 먼저 지배구조개편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8일 “삼성전자 인적분할 이전 SK그룹이 발빠른 사업개편 행보를 나타내고 있다”며 “선제적으로 중간지주회사를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시기적절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삼성 SK, 경제민주화법 정비 전에 지배구조개편 시작하나  
▲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4일 SK그룹 경영진 합숙세미나를 열고 SK 혹은 SK텔레콤을 인적분할하는 내용의 지배구조개편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기간통신사업자로 정부의 규제대상인 SK텔레콤 대신 중간지주회사가 인수합병과 지분투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된다. 또 SK텔레콤의 자회사이자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도 지분 교환 등으로 SK 자회사로 올라설 수 있게 돼 손자회사 지분 요건에서 자유로워진다.

윤 연구원은 “최태원 회장의 이혼 논란 이후 멀게만 느껴졌던 SK하이닉스 자회사 전환이 공론화됐다”며 “SK그룹이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승격하기 위해 SK텔레콤 또는 SK의 인적분할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에 SK나 SK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통해 자회사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에 분할회사의 신주가 배정되면서 의결권이 되살아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SK는 자사주 20.7%, SK텔레콤은 자사주 12.6%를 보유하고 있다.

인적분할 시 자사주를 활용한 지배력 강화 방안에 대해 정치권은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SK그룹이 정치권에서 자사주 의결권 부활을 제한하는 법안이 처리되기 전에 먼저 움직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 자사주에 분할신주를 배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2013년 대한항공은 대주주 지분율이 9.87%였으나 인적분할을 통해 대주주일가가 추가자금투입없이 30%에 이르는 지분율을 확보했다”며 “이는 주주 평등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인데 회사 자본을 통한 재벌 총수의 부당한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려면 자사주에 분할 신주 배정을 금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그룹도 박용진 의원의 법안을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배구조개편을 위해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반대의견을 냈던 엘리엇매니지먼트마저 삼성전자 분할을 요구하고 나섰다.

  삼성 SK, 경제민주화법 정비 전에 지배구조개편 시작하나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는 자사주 12.8%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 의결권 부활은 분할 후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요건을 맞추기 위해 꼭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SK그룹에서 먼저 인적분할을 이용한 지배구조개편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SK그룹에서 자사주를 활용한 인적분할에 나설 경우 정치권에서 관련 논의가 공론화돼 입법절차도 가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후발주자의 경우 자칫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윤태호 연구원은 “경제민주화 법안 통과 이전에 삼성그룹이 삼성전자 인적분할로 자사주를 활용하면 정치권은 명분을 확보해 관련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인적분할 시 자사주 의결권이 제한되면 지주회사 전환 및 사업개편을 준비 중인 SK 그룹 등 다른 기업도 난처해지는 상황”이라고 파악했다.

윤 연구원은 “SK그룹은 어렵게 취득한 SK와 SK텔레콤의 자사주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제적 대응을 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SK가 인적분할에 나설 경우 정치권의 입법에 영향을 미쳐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SK그룹의 움직임에 따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도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