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진해운 채권단 회의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
한진해운이 창립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한진해운의 운명이 법원의 손에 넘어갔다. 한진해운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추가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한진해운은 9월4일 자율협약이 종료되면 그동안 동결됐던 채무가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그 전에 최대한 빨리 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한다.
한진해운이 9월4일까지 채권단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갈 경우 청산될 가능성도 있다.
◆ 한진해운, 청산 가능성 높아
3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이르면 31일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관리는 가장 강도가 높은 구조조정 단계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주도권이 채권단에서 법원으로 넘어간다.
법원은 기존 경영자 대신 법정관리인을 임명해 일정기간 회사의 경영과 재산관리 등을 맡긴다.
기업은 채무를 갚을 방법과 시점을 정해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법원은 해당 회사가 살아날 가능성을 판단해 법정관리를 개시할지 청산할지를 결정한다.
법정관리가 개시되면 법원은 채무조정을 통해 채무를 기업이 갚을 수 있는 수준까지 낮춰준다. 그뒤 기업이 계획대로 채무를 상환하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이 빚을 무사히 다 갚으면 법정관리를 졸업하게 된다.
만약 법원이 회사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법정관리를 개시하지 않고 파산결정을 내린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 |
당장 해외 채권자들이 선박을 압류하고 화물운송계약을 해지하는 등 회사의 정상적 영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배를 빌려준 선주들도 빌려준 배를 최대한 빨리 회수하려 들 것으로 보인다.
해운사 생존에 필수적인 글로벌 해운동맹에서도 퇴출되면서 법원이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한진해운의 부채규모가 5조6천억 원에 이르는 점도 법원의 파산결정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 합병도 불가능할 듯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해운업계는 두 회사를 합병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보유선박 158척, 선복량 108만4천 TEU의 세계 5위 해운사로 올라선다. 현재 선복량 기준으로 한진해운은 7위, 현대상선은 14위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사실상 합병은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합병할 경우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부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상선도 이제 경영정상화에 첫발을 내디딘 만큼 한진해운을 합병할 여력이 없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았다. 임 위원장은 이전에도 두 회사의 합병에 대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정상화가 마무리된다는 전제 하에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결국 한진해운이 항로운항권이나 항만터미널 등 우량자산을 매각하면 현대상선이 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해운업 구조조정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게 점쳐진다.
◆ 국내 1위 해운사, 역사 속으로
한진해운이 청산하면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사가 4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1992년에 국내 해운사 가운데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했고 1995년 거양해운을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한진해운은 2002년 조중훈 창업주가 세상을 뜨자 한진그룹의 형제간 계열분리를 통해 조양호 회장의 동생인 조수호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2006년 조수호 회장이 작고한 뒤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 아래 독자경영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뒤 수년 동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2014년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을 통해 한진해운을 인수하면서 한진그룹 품으로 돌아왔다.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이 정상화할 때까지 보수도 받지 않겠다고 밝힌 뒤 자산매각과 비용절감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4월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한진해운은 용선료협상, 사채권자 채무재조정 등을 진행했으나 결국 내년까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 운영자금 1조 원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