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 청산절차를 밟게 될 경우 국내 해운산업을 넘어 항만업과 수출 제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의 모든 채권과 채무가 동결되면서 투자자들도 1조 원대 손실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 글로벌 해운사 반사이익 가능성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갈 경우 연간 17조 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됐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은 29일 열린 ‘해상수송시장의 건전한 발전방안’ 정책세미나에서 “한진해운 매출 소멸, 환적화물 감소, 운임 폭등 등으로 연간 17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특히 부산지역 해운항만업계는 2300여 개의 일자리 감소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 |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글로벌 15개 해운사 가운데 각각 7위와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보유선박은 한진해운이 98척(61만2천 TEU), 현대상선이 60척(43만6천 TEU)이다.
한진해운은 미주와 유럽 등에 모두 41개 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40여 년 동안 쌓은 수십조 원에 이르는 네트워크 자산이 모두 백지가 된다. 원양노선 하나를 구축하는 데 보통 1조5천억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해운업계는 보고 있다.
한진해운이 청산절차를 밟을 경우 운임상승으로 해외 해운사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대형 해운사들이 지금까지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도 다른 해운사들이 무너질 때까지 버티는 전략을 썼다”며 “이런 식으로 해운업계 구조조정이 일어나면 결국 버틸 여력이 있는 해외 대형 해운사들에게만 유리하다”고 말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사라지면 해운사 1개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네트워크와 노하우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중요한 해운업의 특성을 볼 때 국가가 아무리 투자해도 한진해운같은 해운사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아시아시장을 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진해운은 글로벌 점유율 순위는 7위지만 아시아~미주노선의 경우 점유율이 7%로 머스크의 9%와 비슷한 수준이다.
◆ 항만업과 수출제조업에도 피해
한진해운이 청산될 경우 수출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한진해운이 사라지면 국내 수출입 화주들이 매년 4407억 원의 운송비를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했다. 운송비 부담이 늘며 수출가격이 올라 결국 가격경쟁력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 |
부산항도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부산항은 터미널 수입 감소, 선박관리와 수리보험 급감 등으로 연간 4400억 원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산됐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가 결정되면 해운동맹에서도 즉각 퇴출당한다. 이 경우 다른 동맹사들이 부산항을 환적거점으로 이용할 이유도 없어진다.
시민운동단체인 부산항을사랑하는시민모임, 부산항발전협의회.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는 29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진해운은 비록 사기업이지만 우리나라 수출품 수송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국가기간산업의 성격을 띠는 만큼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면 그 후폭풍이 국가는 물론 부산지역 경제를 강타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한진해운이 담당하는 연간 100만 개 이상의 환적화물 가운데 최소 절반이 다른 나라 항만으로 떠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렇게 되면 부산항의 연 매출이 7조~8조 원 줄어들고 선용품과 물류시장 등 부산의 관련 산업에도 연쇄 타격을 준다”고 주장했다.
◆ 투자자 1조 원대 손실
회사채에 투자했던 투자자들도 대규모 손실을 볼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이 발행한 회사채 잔액은 6월 말 기준으로 공모채 4210억 원과 사모채 7681억 원 등 모두 1조1891억 원에 이른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과 채무가 모두 동결되기 때문에 회사채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반면 금융권의 경우 앞서 STX조선해양 법정관리 당시 천문학적 손실을 감내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피해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쌓아둔 대손충당금을 통해 투자 손실에 따른 회계 문제를 미리 방어해 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권에서 한진해운에 대출한 규모는 산업은행 6660억 원, KEB하나은행 890억 원, 농협은행 850억 원, 우리은행 690억 원, KB국민은행 530억 원 등 1조 원에 이른다.
현재 절반 이상의 충당금을 더 쌓아야하는 하나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들이 충당금 100%를 확보해둔 상태다. 하나은행을 제외한 금융권 피해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한진해운의 최대주주로 지분 33.2%를 들고 있는 대한항공도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 지분가치 조정에 따른 평가손실, 영구채권 회수가능가액 하락에 따른 손실 등으로 올해 상반기에 5천억 원에 가까운 영업외손실을 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5200억 원이었던 대한항공의 한진해운 보유지분 가치는 1634억 원으로 급락해 2485억 원이 손실 처리됐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갈 경우 대한항공이 한진해운 지분과 영구채, 전환사채 등을 더해 모두 5천억 원가량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