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KB금융그룹은 명실공히 국내 리딩 금융그룹이다.
KB금융의 1분기 말 자산 규모는 691조 원으로 한국의 2023년 예산인 639조 원보다 크다.
▲ 윤종규 회장은 지난 9년 동안 KB금융의 단단한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윤종규 회장이 2014년 11월21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KB금융은 국내 금융그룹 가운데 자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은행, 증권, 자산운용, 보험, 카드, 캐피탈 등 여러 금융분야에서 상위권 계열사를 두고 국내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KB금융의 리더십이 9년 만에 바뀔 것으로 보인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전날 회의를 통해 9월8일 최종 후보를 선정하기로 회장 인선 절차를 확정했다.
국내 1등 금융그룹의 리더십이 바뀔 가능성이 큰 상황, 국내외 경제 여건이 안정적이면 좋으련만 국내 금융시장은 여전히 여러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
가계부채는 최근 몇 달 사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며 사상 최대 규모로 늘었고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연체율도 계속해서 오르며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당국은 최근까지도 새마을금고의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사태 진화에 진땀을 뺐다.
올해 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뱅크런 이후 가능성이 불거졌던 글로벌 금융위기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도 3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무너진 뒤 9월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기까지 6개월의 시차를 두고 벌어졌다.
그 6개월 사이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금처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강조했지만 미국 금융시장은 처참히 붕괴됐다.
앞으로 약 한 달 반 가량 펼쳐질 KB금융 회장 선임 과정이 KB금융뿐 아니라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중요해 보이는 이유다.
그런 만큼 KB금융은 이번 회장 선임 과정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일며 리더십이 흔들리는 것을 더없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KB금융 입장에서 이번 회장 선임 과정은 결자해지로도 볼 수 있다.
KB금융은 10년 전 지주 회장과 KB국민은행장의 갈등으로 큰 내홍을 겪었다. 당시 사태를 수습하고 회장에 오른 이가 바로 지금의
윤종규 회장이다.
KB금융은 이번 회장 선임 절차를 통해 최근 10년 사이 국내 리딩 금융그룹에 걸맞는 안정적이고 단단한 지배구조를 확보했다는 점을 시장에 보여줄 필요가 있는 셈이다.
회장 선임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윤종규 회장의 역할도 중요해 보인다.
윤종규 회장은 2014년 11월 회장에 올라 지난 9년 동안 KB금융의 성장을 이끌며 경영승계 프로그램도 잘 갖춰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날 회추위 이후 외부인사 가능성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번 회장 선임 과정이 부회장 3인의 3파전 구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윤종규 회장은 여전히 이번 회장 선임 과정의 주요 변수로 여겨지고 있다.
윤종규 회장이 아직 특별한 거취 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KB금융은 회장 선임 및 재선임 시 연령을 만 70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55년생인 윤 회장은 나이 제한에 걸리지 않아 다시 한 번 연임이 가능하다.
윤 회장이 본인 입으로 용퇴를 선언하거나 숏리스트가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까지는 윤 회장의 이름이 언론에서 계속 오르내리며 이런 저런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금융시장은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고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이런 측면에서 윤 회장의 선제적 거취 표명은 KB금융 회장 선임과 관련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선택일 수 있다.
▲ 윤종규 회장이 14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그룹 경영전략회의'를 이끌고 있다. < KB금융 > |
윤 회장이 만약 용퇴를 선택한다면 이는 국내 금융지주 지배구조 변화의 선례로도 남을 수 있다.
국내 주요 금융그룹 회장 선임 과정을 보면 전임자가 회장 선임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자발적으로 물러난 사례를 찾기 쉽지 않다.
용퇴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용기 있게 물러남’이다. 이를 고려할 때 2010년 이후 진정한 의미의 용퇴를 한 회장으로는 2017년 물러난 한동우 전 신한금융 회장 정도를 들 수 있다.
“퇴진의사를 미리 밝힌 것은 공표를 통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991년 초대 하나은행장을 지내고 2001년 초대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은 윤병철 전 회장은 2014년 쓴 회고록 '금융은 사람이다'에서 이렇게 돌아본다. 윤 전 회장은 연임이 보장되는 데도 스스로 은행장에서 물러난 첫 인사다.
윤 전 회장은 “오전에는 그만둬야지 했다가 오후에는 이 일만큼은 내가 마무리해야지 하는 식으로 마음이 흔들려” 공개적으로 퇴진의사를 밝혔다며 77년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하나은행장 경영승계를 꼽는다.
회장에서 스스로 물어나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윤종규 회장이 만약 용퇴를 선택한다면 KB금융 회장 선임 과정의 불확실성을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분명 본인과 KB금융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