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폭염, 가뭄, 산불, 홍수, 생태계 파괴 등 급격한 기후변화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산업화 이후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의 여파가 다시 인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세계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과 해법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비즈니스포스트와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현재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진단하고, 그 해법들을 다루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비즈니스포스트는 기후솔루션의 문제 제기와 대안 제안 시리즈를 지면으로 전한다. 더 상세한 현장 상황과 문제, 해법 설명은 기후솔루션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기후의 해법들](1) 가스발전소에 흔들리는 ‘탄소 없는 섬’ 제주, 유연성 자원 확보로 돌파해야
[기후의 해법들](2) 인허가에 발목 잡힌 해상풍력 확대, 해법은 정부 주도 입지 계획 |
[비즈니스포스트] 제주는 한국 기후변화 대응에서 ‘에너지 전환의 첨병’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발전원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021년 기준 18.3%로 한국 전체보다 두 배 이상 높다. 2030년까지 사용하는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의 에너지 전환 행보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유튜브채널을 통해 공개한 ‘나만 알긴 아까운, 제주도에 추진하고 있는 이것’ 영상을 통해 제주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스발전소 건설 문제를 짚었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2028년까지 300MW(메가와트) 규모의 가스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제주도에 가스발전소를 지으려는 까닭은 제주도의 전력 사용량과 하계 최대전력수요가 매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전력수요는 하루 중 가장 전력 사용량이 많은 순간의 전력수요를 뜻한다.
제주도의 전력사용량은 2000년 2천 GWh(기가와트시)를 밑돌았지만 2021년에는 6천 GWh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
하계 최대전력수요 역시 2012년 600MW 대에서 2021년에는 1천 MW를 웃도는 수준으로 늘었다.
▲ 제주도는 2021년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18%를 넘었을 정도로 전국에서 에너지 전환에 가장 앞서 있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51% 남짓한 필수운전발전기 즉 제주발전기는 대부분 화석연료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나머지 30% 이상은 고압직류송전선(HVDC)을 통해 육지로부터 공급 받는다. 육지 전력에는 화력발전과 재생에너지 발전원이 섞여 있다. 사진은 영상 중 제주도의 에너지 비중을 설명하는 그래픽. <기후솔루션> |
영상을 제작하고 직접 출연한 이정민 기후솔루션 피디(PD)는 “전력 사용량 증가에 대응 방법이 가스발전소라는 것은 물음표”라며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다른 대안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제주도의 전력 수급 상황을 보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이미 전력 수요를 넘어서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전력의 수요량보다 발전량이 많아지면 전력 계통에 과부하를 주게 되고 계통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특정 발전기를 대상으로 발전을 중단시키는 조치인 ‘출력제어’가 발생하게 된다. 제주도는 육지와 분리된 별도의 전력 계통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출력제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어느 발전원에 우선권을 줄지를 놓고 현재 계통 운영 방식에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 피디는 “현재 제주도는 화석연료 발전기의 가동을 우선 고려하는 ‘경직된 전력계통’ 운영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며 “계통 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돌아가야 하는 ‘필수운전 발전기’를 지정해 놓는데 필수운전 발전기의 대부분이 화석연료 발전기”라고 말했다.
▲ 이정민 기후솔루션 피디가 영상을 통해 가스발전소가 결국 좌초자산이 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기후솔루션> |
제주도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가스발전소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인데다 가스발전소는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전국 가스발전소 평균 이용률은 2021년 기준 44.9%에서 2036년 15.8%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화력발전의 가치가 급속히 떨어지면 가스발전소는 설비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수익을 못 내는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피디는 “현재 제주에 새로 지으려는 가스발전소의 발전 사업자 모집도 쉽지 않다고 한다”며 “300MW나 되는 규모의 발전소에서 수익을 내려면 이용률이 어느 정도 보장돼야 하는데 지어봤자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망이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가스발전소 건설에 따른 대기 오염과 인근 주민의 건강 문제, 가스 수입에 따른 에너지 안보 문제 역시 제주도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력 문제를 해결해야 할 근거로 제시됐다.
다만 재생에너지는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지는 간헐성 문제가 단점으로 꼽히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유연성 자원’ 확보를 제안한다. 선진화된 국가의 전력 산업은 이미 경직된 전력 계통이 아니라 유연성 자원을 활용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유연성 자원이란 계통운영자의 전력 공급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을 뜻한다. 전기 에너지를 저장한 후 필요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전력수요 피크를 억제하고 심야수요를 증대시키는 부하관리 즉 수요반응(DR) 등 여러 수단이 있다.
손가영 기후솔루션 가스전력&유연성팀 연구원은 “전력계통의 유연성이 높을수록 변동성과 불확실성에 잘 대응할 수 있다”며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짝꿍인 유연성 자원의 확대 또한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 제주도에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유연성 자원 확보와 함께 전력계통의 유연한 운영도 필수다. 사진은 유연한 전력계통(오른쪽)과 현재의 경직된 전력계통(왼쪽)의 차이를 설명하는 그래픽. <기후솔루션> |
결국 제주도가 세계적 흐름에 따라 ‘2030년 탄소 없는 섬’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스발전소가 아닌 유연성 자원 확보와 그에 걸맞는 계통 운영으로 재생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피디는 영상을 마무리하면서 “제주도에 부작용만 가져올 가스발전소 건설 계획이 무산되고 재생에너지가 안정적으로 확대되는 데 필요한 유연성 자원과 관련 제도가 잘 마련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의 목소리를 내달라”고 강조했다. 정리=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