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덕수 국무총리가 자신을 보좌할 국무조정실장 자리에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을 임명하는 인선안을 놓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 총리가 국민의힘의 반대를 넘어 윤 행장 인선을 관철한다면 책임총리로서 입지를 세우면서 민주당과 협치 명분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윤 행장을 국무조정실장에 임명하는 문제를 놓고 신중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용산 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윤 행장 관련)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출근길에서 윤 행장 인선과 관련된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것도 윤 대통령의 고심이 읽히는 부분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윤 행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는 이유로 '
윤종원 불가론'을 외치며 국무조정실장 임명에 제동을 걸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윤 행장이 국무조정실장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인 25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날에는 "당이 반대하는 인사를 왜 계속 기용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한 총리를 향해 날을 세웠다.
이날도 강원도 원주문화원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의 입장을 충분히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전달했기 때문에 두 분이 숙고의 끝에 현명한 결정을 하리라 믿고 있다"며 압박을 이어갔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무조정실장이 정부 부처 전반을 조율하는 장관급 요직인데다 향후 경제부총리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국민의힘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다는 시선도 있다.
한 총리부터 노무현 정부 시절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뒤 경제부총리에 임명됐으며
문재인 정부의 김동연·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모두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경제부총리가 됐다.
추경호 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박근혜 정부 때 국무조정실장을 지냈고 국회의장에 내정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김대중 정부 국무조정실장을 맡은 뒤 노무현 정부 경제부총리에 올랐다.
한 총리는 윤 행장 카드를 고수하는 모습이다.
한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실이 여당의 반대에 난감해하고 있다'는 질문에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다.
한 총리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최종적으로 인사권자가 판단할 것"이라면서도 "훌륭한 경험을 가졌다"고 윤 행장을 두둔한 바 있다.
국무조정실은 국무총리를 보좌하고 중앙행정기관의 지휘·감독, 정책 조정을 맡는 곳이기에 실장 인선에는 총리의 의사가 대체로 반영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탈피하겠다면서 책임총리제를 약속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과 책임을 국무총리에게 나누겠다는 것이다.
책임총리는 국무위원 추천과 제청권을 실제로 행사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는 총리를 뜻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김종필 전 총리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이해찬 전 총리 정도가 책임총리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한 총리가 여당 반대에도 윤 대통령으로부터 윤 행장의 국무조정실장 임명을 받아낸다면 책임총리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반대에 부딪혀 인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책임총리는 허울일뿐 역대 의전총리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 총리가 추천한 국무조정실장을 여당 전원이 반대하고 나섰다""며 "총리를 인준해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벌써 허수아비 총리로 길들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총리가 윤 행장을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하면 민주당과 협치를 내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총리는 민주당의 협조로 국회 인준을 통과해
윤석열 정부 초대 총리에 올랐다. 이전 정부 인사인 윤 행장을 중용하면 협치의 명분을 살릴 수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윤 행장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수석을 지내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옹호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한 총리는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하고 있다.
한 총리는 "사실만 얘기한다면 윤 행장은 소득주도성장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불려 온 사람"이라며 "윤 행장이 경제수석을 하면서 소득주도성장이 '포용적 성장' 정책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소득주도성장은
홍장표 전 경제수석과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 주도한 정책이고 윤 행장은 경제정책 안정화를 지향했다는 것이 윤 행장을 옹호하는 측의 주장이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