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은행 마이데이터 오픈알림 이벤트 경품 변경 안내 게시물. <우리은행> |
“우리 마이데이터 오픈알림 이벤트 경품 변경 알림.”
마이데이터 서비스 시작을 한 시간 앞두고 우리은행으로부터 기자의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마이데이터 오픈알림 이벤트 경품이 제네시스 GV60에서 아이패드프로, 다이슨공기청정기 등으로 변경된다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잠시나마 내차 마련의 꿈을 꿔 봤지만 제네시스는 물거품이 돼 사라지고 말았다. 마음이 헛헛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 출범 경품으로 자동차를 내건 곳은 우리은행만이 아니었다. KB국민은행은 GV70, GV80 등 우리은행보다 급이 높은 차량을 경품으로 내놨다. 하지만 KB국민은행 역시 서비스 시작 전 경품을 아이패드프로로 변경했다.
갑작스럽게 경품이 아까워지기라도 한 걸까. 아니다. 은행들은 잘못이 없다. 금융당국이 마이데이터 서비스 관련 과도한 경품 지급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서비스가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경품이 바뀐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당국은 2월 마이데이터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이후 과도한 마케팅을 금지하는 규정을 세 차례나 손봤다.
7월 평균 3만 원을 초과하는 경품을 금지하도록 했다가 자동차가 경품으로 등장하자 11월19일 100만 원을 초과하는 고가경품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금융당국은 가이드라인에서 “다양한 개인신용정보가 집중되는 마이데이터 사업자간 과당경쟁 방지를 위한 입법 취지와 소비자 차별 우려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과도한 경품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경품이 과도한지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는 여러 다른 사례와 비교해 형평성이 맞아야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최근 중앙일보는 제호 변경과 홈페이지 개편 등을 기념해 회원 감사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1등 경품이 제네시스 G80이었다. 2등은 LG올레드TV, 3등은 SK매직 식기세척기였다.
또 하이원리조트는 3일 스키장 개장을 맞아 투숙객에게 QM6, XM3 등 경품을 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특별히 과당경쟁을 유발하고 있거나 경품이 과도해 소비자 보호를 위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금융당국의 말처럼 마이데이터 사업은 다양한 개인신용정보가 집중된다. 사용자가 한번만 동의해도 수십개 기관으로부터 정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만큼 사업자에게 획기적 사업기회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이 신규 상품을 출시하고 이벤트를 진행할 때도 커피 쿠폰 등을 준다. 추가로 수천~수만 원 상당 경품을 지급하고 때로 태블릿PC를 주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로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과 질을 고려하면 경품의 가치가 수십 배 이상 불어난다 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마이데이터 사업의 대원칙은 고객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행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며 사업자는 고객의 이익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이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도 분명하게 명시된 사항이다.
그렇다면 과당경쟁 방지를 명분으로 앞세운 경품 규제가 오히려 고객에게 돌아갈 수 있는 이익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는 것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더욱이 금융당국의 마이데이터 사업 추진 상황을 보면 과도한 경쟁을 방지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애꿎은 경품 마케팅만 걸고 넘어진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애초 마이데이터 본격 시행 일정은 8월이었으나 준비가 미비해 5개월이나 늦춰졌다. 그 사이 금융당국은 본허가 사업자를 두 배나 늘리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정작 본허가를 받은 이들 가운데 아직 인프라 등을 갖추지 못해 아직까지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태반이다. 1월 본격 시행 일정에 맞출 수 있는 사업자도 30여 곳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이데이터 사업을 두고 본격 시행 차질 우려가 제기되는 등 이런 저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현재 선보인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사업자마다 정보제공 범위에 차이가 있는 등 엉성한 것도 한 몫을 한다.
경품을 둘러싼 혼란 역시 마이데이터 사업 체계가 아직 잡히지 않았기 때문일 터이다. 얼마 남지 않은 본격 시행 때는 불확실성이 모두 걷히고 정당한 경쟁과 확고한 소비자 보호를 바탕으로 금융소비자의 데이터주권이 제대로 인정받는 일만 남아있기를 바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