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과 내년 초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이 예상보다 가파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장 점유율 확대보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전략으로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이석희 SK하이닉스 각자대표이사 사장. |
2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따르면 두 회사 모두 4분기 메모리반도체사업에서 생산성 높은 미세공정 제품과 고부가 서버용 제품의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삼성전자는 극자외선(EUV)공정을 적용한 14나노미터 선폭의 D램과 176단 낸드플래시의 생산비중을 기존보다 확대하기로 했다.
D램 생산에 극자외선공정을 적용하면 기존 액침불화아르곤 활용 공정과 비교해 생산성이 높아진다. 삼성전자는 14나노 D램의 경우 극자외선공정 적용으로 웨이퍼 1장 당 D램 생산량이 20%가량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고부가제품인 서버용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서 수요가 발생하는 15나노 D램과 128단 낸드플래시의 생산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SK하이닉스도 극자외선공정을 적용한 10나노급 4세대(14나노) D램의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 낸드플래시의 경우는 서버용 시장을 겨냥한 128단 제품의 비중을 중심으로 출하량을 늘린다.
두 회사 모두 4분기 메모리반도체 비트그로스(비트단위의 출하량 증가율)를 D램은 시장 평균 수준, 낸드플래시는 시장 평균을 소폭 웃도는 수준에 맞춘다는 생산계획도 세웠다.
시장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기보다는 제품 수요에 맞춘 만큼의 생산계획을 통해 점유율 방어에 주력하는 대신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생산단계에서 수익성 중시전략과 함께 신규 생산보다 재고 소진에 무게를 두는 판매전략도 병행해 제품 공급량 조절계획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빅3’로 꼽히는 미국 마이크론은 이미 재고 소진전략을 개시한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9월 마이크론이 발표한 미국 회계연도 기준 4분기(6~8월) 회계자료에 따르면 4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이 44억8700만 달러(5조3천억 원가량)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보다 1.1% 줄었다.
마이크론의 재고자산 축소는 메모리반도체업황이 하향 사이클을 지나던 2019년 1분기(9~11월) 말 이후 처음이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업계에서 우려하던 메모리반도체시장 둔화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며 “시장 둔화폭이 당초 예상보다 클 가능성도 높아 보이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재고 소진을 우선시하며 제품 가격 조절에 나설 공산이 크다”고 바라봤다.
글로벌 전자제품시장에서 시스템반도체 공급부족에 따른 IT제품 생산차질이 이어지면서 메모리반도체 수요도 줄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올해 말과 내년 초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가 퍼지고 있었다.
이런 시장의 우려가 예상보다 큰 규모로 현실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트포스에 따르면 10월 말 PC용 D램 고정거래가격은 9월보다 9.51% 하락했다. 전월 대비 하락폭은 2019년 7월의 11.18% 이후 가장 큰 수치를 보였다.
애초 트렌드포스는 D램 고정거래가격이 4분기를 통틀어 3~8%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이 전망을 웃도는 수준으로 가격이 하락했다.
10월 낸드플래시 범용 제품의 고정거래가격은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지속되던 가격 상승세가 꺾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11월부터의 업황이 좋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현물 거래가격이 떨어질 수는 있어도 고정거래가격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고 반박해 왔다.
이런 주장은 결국 맞지 않게 된 셈이다.
다만 두 회사 모두 시설투자(CAPEX) 집행계획을 면밀하게 점검하면서 메모리반도체업황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통상적으로 분기 실적발표회에서 그 해의 시설투자계획을 시장과 공유해왔다. 그런데 앞서 10월 열린 2021년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올해 시설투자 집행 전망을 발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장에 불확실성이 여럿 존재해 메모리반도체사업 전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시설투자 규모와 방향성 등은 매우 신중한 검토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시설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시장 불확실성에 따른 수요 변화가 발생할 경우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점유율보다는 수익성 확보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