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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은 바뀌고 있는가?’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 변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후 삼성그룹은 분명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재계에서 이를 ‘실용주의’로 부른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사업부문은 과감하게 매각하고 선택과 집중을 한다.
삼성그룹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방위산업과 화학 관련 계열사를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올해 들어 광고업계 1위인 제일기획까지 해외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은 ‘내부 DNA 개편’에도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24일 경기도 수원시 디지털시티 안 디지털연구소(R4)에서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처럼 빠른 실행과 열린 소통으로 지속적인 혁신을 해나가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신생 벤처기업처럼 삼성전자도 자율성과 창의적 사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직급 체계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호칭도 ‘00님’ ‘00선배’ ‘00프로’처럼 통일할 계획이라고 한다.
삼성과 같은 거대한 조직이 대내외적 경제위기를 맞아 혁신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염려하는 시선도 있다.
삼성그룹은 열린 소통을 내세우고 있지만 계열사 매각이나 사업구조 개편 때 직원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는 의문이다. 매각설에 휩싸인 삼성그룹 계열사의 직원들은 이 부회장의 과감한 사업정리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처럼 인사혁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전례도 있다. KT의 경우 5년간의 ‘매니저’ 제도를 포기하고 2014년 기존 직급체계로 돌아갔다. 한 관계자는 “호칭이 달라진다고 연공서열이 무시되진 않는다”며 “급격한 변화가 오히려 내부 혼란과 구조조정이라는 후폭풍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의 ‘열린 조직문화’가 오너경영과 직원들의 충성심을 미덕으로 삼았던 ‘관리의 삼성’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오홍석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이 기존의 재벌 체제에서 벗어나 업종별 전문기업체제로 전환하는 방향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오너와 최고위층에 권한이 집중된 삼성 같은 조직을 단기간에 제도 개편, 문화 혁신 등으로 변화시키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오랫동안 방향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이란 책이 있다. 재벌개혁론자인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가 썼다.
200페이지가 넘는 책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핀란드의 노키아처럼 삼성전자도 잘못하면 한방에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삼성전자가 위기라는 진단에 대해 “이미 위기가 상당히 진행됐다”며 “특히 삼성전자 이익의 대부분을 내고 있는 휴대폰사업이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삼성의 위기는 2014년부터 시작됐는데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시점과 맞물려 있다”며 “삼성 스스로 위기라고 말하지만 오로지 관심은 오너의 승계에만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