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4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22년도 건강보험료율 인상폭이 1.89%로 결정됐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번 결정으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연평균 건강보험료율 인상폭 평균은 2.7%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
문재인케어’를 내걸면서 계획했던 건강보험료율 인상폭인 3.2%에는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해 건강보험료율 인상폭은 현재 건강보험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지닌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누구나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원하지만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4년 동안 꾸준하게 2% 이상 건강보험료율을 인상하다가 임기 마지막 해에 다소 주춤한 모양새를 보인 데는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선거가 영향을 줬을 것으로 짐작된다.
직장가입자를 기준으로 보험료율은 올해 6.86%에서 내년 6.99%로 오르게 되는데 인상폭을 더 높인다면 보험료율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만큼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고려됐을 것이다.
문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점이다. 복지정책은 가장 되돌리기 어려운 정책이기도 하다.
여권 대통령선거주자들의 움직임만 봐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국민 주치의’제도를,
정세균 전 총리는 ‘공동체 복지’를 내세우며 방문의료 활성화 및 요양병원 간병비의 건강보험 포함 등 건강보험 관련 정책의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24일 대한한의사협회 등 의료 관련 단체들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추진을 위한 정책협약을 맺으며 의료복지 관련 공약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는 반드시 그만큼의 재원 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세균 전 총리는 20일 복지공약을 발표한 뒤 기자들과 만나 “복지를 늘리겠다면서 증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확대되는 만큼 필요한 재원을 건강보험료율 인상으로 풀어내는 일은 가능해 보이지도 않고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특히 의료비 지출이 많은 노령인구의 증가와 같은 사회의 변화까지 고려하면 보험료율 인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일은 생산인구의 건강보험 부담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해법이 반드시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 등에서는 건강보험료율 인상에만 의존하는 보장성 강화정책을 비판하며 제도 자체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7일 2022년 건강보험료율 인상을 놓고 “이제 보험료율 수준이 법적상한인 8%에 다다르고 있는 만큼 정부는 보장성 확대의 수단으로 보험료율 인상에만 기대지 말아야 한다”고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구체적 대안으로는 ‘나이롱 환자’와 같은 불필요한 건강보험재정 지출의 단속, 경증질환의 비급여 범위 및 부담금 조정 등 비용부담체계의 합리화, 상급종합병원 집중도를 완화하기 위한 의료이용체계의 재정비 등이 꼽힌다.
건강보험 재정의 합리적 운용을 위해 경증질환자에 폭넓은 보장보다는 중증질환자를 위한 보장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성과와 과제 – 중증질환자 약제 보장성 개선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열며 “생사의 갈림길에 고통받는 중증질환자에게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다면 그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증질환 신약에 위험분담제 확대, 소득분위에 따른 위험분담제, 생명과 직결된 신약에 건강보험 신속등재 제도 등이 제시됐다.
최혜영 민주당 의원은 26일 현재 건강보험재정으로 감당이 어려운 희귀질환자, 중증질환자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복권기금 등 다른 재원을 활용하자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건강보험이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국민의 모든 의료 수요를 감당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제는 보장성 확대나 보험료율 인상과 같은 제한된 범주의 논의에서 벗어나 정해진 건강보험재정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심도있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돼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