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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2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뉴시스> |
그의 말투는 막힘없이 시원시원했다. 검은 뿔테 안경 뒤로 비치는 눈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걸음걸이도 당당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8년 만에 공식 자리에 나타났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이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28일 열린 기자회견장이었다.
박 회장은 마치 ‘열정의 전도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100분 가량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박 회장은 ‘열정’ ‘꿈’ ‘야성’ ‘갈증’ ‘상상의 힘’과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박 회장은 “금융에서 삼성 같은 글로벌 회사가 나오기 위해서 먼저 불가능한 꿈을 꾸고 열정을 다해 현실화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이병철 정주영 두 회장이 오늘날 삼성과 현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상상의 힘, 사고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대우증권 인수를 계기로 한국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의 DNA를 바꿔 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선배들은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으로 한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만들었지만 최근 도전과 투자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고령화와 저성장, 내수와 수출부진으로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선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의 대우증권 인수도 한국 경제의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절실한 고민에서 나온 시도라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박 회장의 말마따나 한국경제는 최근 몇년째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성장동력을 상실한 한국경제를 대변하듯 증권시장도 수년째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내외적 경기침체 속에서 많은 기업들은 투자에 나서기는커녕 잔뜩 움츠린 채 위기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재계 순위 1위인 삼성그룹의 경우 내년도 화두를 ‘실용’으로 잡고 추가적인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예고한 상태다.
일부 대기업은 비용절감을 위해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까지 실시해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했다.
박 회장의 태도가 주목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버린 것으로만 보였던 ‘기업가 정신’을 다시 환기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합병으로 자기자본 8조 원의 초대형 증권사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박 회장은 “기업은 투자를 먹고사는 생물”이라며 “야성이 줄면 관리는 쉽지만 조직은 생명력을 잃고 서서히 죽어간다”고도 말했다.
그의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지금으로선 누구도 알 수 없다.
물론 박 회장의 이런 발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미래에셋증권이 2007년 출시한 ‘인사이트 펀드’에 가입했다 원금을 까먹은 개인투자자들은 박 회장을 ‘탐욕스런 증권맨’으로 바라본다. 박 회장 관련 기사에는 지금도 부정적인 댓글이 수십개씩 올라온다.
박 회장의 이런 ‘이력’ 때문에 박 회장의 발언을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 모으기 위한 ‘쇼’로 치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투자활성화와 기업가 정신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의 ‘100%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는 지금 어려움을 헤쳐나갈 ‘돌파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다. 길이 없어도 도전은 계속해야 한다.” 박 회장을 어떻게 바라보든 그저 흘려듣기는 어려운 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