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한진칼 유상증자 참여에 큰 걸림돌을 넘었지만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했다는 꼬리표를 떼기는 어렵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한진칼 경영참여가 아시아나항공 회생과 한국 항공산업 재편 등 대의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당위성을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한진칼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은 전례가 없고 항공업황 개선시기도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에 이 회장의 선택은 어려운 길이 될 수밖에 없다.
한진칼은 2일 예정대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산업은행을 새 대주주로 맞는다.
법원이 한진칼 3자 주주연합에 포함된 KCGI에서 제기한 유상증자 중단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면서 산업은행의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한진그룹 자금지원에 큰 걸림돌을 넘게 됐다.
법원은 산업은행이 조 회장 경영권 방어를 돕기 위해 한진칼 주주로 참여한다는 KCGI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산업은행이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분쟁 개입이 주요 목적이라 볼 수 없고 산업은행이 확보하는 지분규모가 판도를 결정적으로 바꾼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항공업 재편과 아시아나항공 회생을 위해 한진칼에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해야만 한다는
이동걸 회장의 시각을 법원에서 대부분 받아들인 셈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결과적으로는 조 회장 경영권 방어를 돕는 역할을 한다는 법적 판단이 나오게 된 만큼 조 회장 백기사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는 꼬리표가 계속 남을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이 결국 매각을 다급하게 추진해 세금으로 지원한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그룹에 안겨주고 조 회장 등 경영진의 경영권도 지켜줬다는 비판을 계속 짊어지고 가야만 한다.
물론 이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두고 별다른 대안을 내놓을 수 없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항공업황이 불안한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을 국유화해 막대한 세금을 추가로 투입하거나 파산을 결정해 임직원과 주주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일 외에는 뚜렷한 해법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한진그룹 경영권에 영향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제안했다면 조 회장을 포함한 한진칼 경영진이 이를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낮다.
이 회장은 최근 온라인 브리핑에서 항공업 재편과 아시아나항공 고용유지, 혈세 투입 최소화를 위해서 한진그룹 자금지원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회장에게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이런 대의를 위해 조 회장을 돕는 데 따른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는 당위성을 결과로 인정받는 것이다.
법원은 산업은행이 항공산업 구조개편을 위해 한진칼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며 이 회장이 내세운 명분에 힘을 실어줬다.
그만큼 이 회장으로서는 앞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아시아나항공 임직원 고용승계 약속이 지켜지도록 하는 무거운 과제가 남게 됐다.
이 회장이 산업은행의 한진칼 경영 참여에 이유로 들었던 이런 목표들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는다면 결국 산업은행은 얻는 것 없이 조 회장 경영권 방어만 도와준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앞으로 쉽지 않은 길을 가야만 한다.
산업은행이 경영진 감시 등을 목적으로 지분을 확보해 경영에 참여하는 일은 전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한진칼 사외이사 추천과 경영평가위원회, 윤리경영위원회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조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 감시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임직원 전원 고용승계와 같은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는 사례도 흔하지 않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항공업황 침체가 언제 정상화될 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해 항공산업을 살려내는 일도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 전보다 더 심각한 부진을 겪어 결국 산업은행의 혈세 지원이 계속 이어져야만 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국적항공사를 통합해 항공산업을 재건하겠다는 이 회장의 시도는 역사에 남을 만한 산업재편 사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훗날 이 회장의 노력이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을 지, 잘못된 판단에 따른 패착으로 기록될 지는 결과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이 회장은 11월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항공업이 발전하려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일을 진행해야만 한다"며 "항공업 및 연관산업 종사자와 가족 등 십수만 명의 운명이 걸린 일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