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보면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KB국민은행이 하루 만에 채용공고를 수정하는 걸 보면서 이런 말이 절로 떠오른다.
KB국민은행은 채용공고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자 디지털 과제 제출과 연수 대상자를 기존 지원자 전체에서 1차면접 대상자로 축소했다.
사실 좋은 인재를 뽑고 싶은 건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 역시 예외는 아닐 거다.
허수를 걸러 번거로움을 줄이고 디지털 역량까지 갖춘 인재를 뽑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어떻게 뽑든 채용 권한이 기업에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일에는 상대가 있는 법이다.
KB국민은행이 원하는 인재를 찾는 데만 집중하느라 취업준비생 처지에서 채용절차를 살피지 못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취업준비생들이 KB국민은행의 ‘이기적’ 채용절차를 보고 분노한 것 역시 당연하다.
좋은 이미지를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이미 인터넷에서 KB국민은행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KB국민은행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금융권의 각종 사건사고에서 한발 비켜나 있어 금융사고의 무풍지대로 불렸다는 점에서 이번 ‘실수’가 더욱 뼈아플 것으로 보인다.
독일어를 우대한다는 점을 놓고는 내정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19 시기, 취업에 힘겨워하는 취준생을 두 번 죽이는 KB국민은행의 채용갑질 의혹을 조사해달라’는 청원도 등장했다.
KB국민은행이 과거 채용비리로 크게 데인 뒤 무엇보다 채용절차의 투명성에 신경을 써왔던 만큼 이런 의혹은 억울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KB국민은행이 그동안 미래의 잠재고객인 젊은층에 많은 공을 들여왔던 만큼 상실감은 더 클 것이다.
실제 KB국민은행이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해 벌이고 있는 사회공헌사업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청년을 위한 대표적 사회공헌활동이 ‘KB굿잡 취업박람회’라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는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일로 KB국민은행은 잃은 게 많다. 하루 만에 몇 년 동안 쌓은 공든 탑이 무너졌다. 시중은행들은 상품이나 서비스에 특별한 차이가 없어 브랜드 이미지가 가장 큰 경쟁력이다.
KB국민은행 내부의 의사소통을 놓고도 의문이 제기된다. ‘미쳤다’는 말까지 나오는 채용공고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 자체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KB국민은행이 지적을 받아들여 곧바로 채용공고를 수정했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게 분명하다.
기업이 취업준비생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배려나 상식적 접근은 필요하지 않을까. 비싼 수업료는 한 번으로 족하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