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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은 재일교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 2014-05-06 15: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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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금융은 재일교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 한동우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지난 3월 26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됐다.

신한금융에 대한 ‘재일교포’의 영향력은 넓고도 강하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이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한 회장도 라응찬 전 회장처럼 재일교포 주주들에게 공을 들인 뒤에야 지난 3월 연임할 수 있었다.


지난 3월26일 열린 신한금융 주주총회는 다른 회사 주주총회와 색다른 광경이 연출됐다. 행사장에 한글보다 한자로 쓰인 명패가 많았다. 프레젠테이션도 한자가 대거 사용됐다. 주주들에게 나눠준 주총자료도 한글과 한자 두벌로 마련됐다. 일본어 동시통역도 제공했다.


주주총회에 참석한 재일교포 주주들을 배려한 조처였다. 신한금융에서 재일교포 주주들의 지분은 17% 정도로 추정된다. 그동안 많이 줄었음에도 이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신한금융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 지분이 8.81%인 점을 고려하면 재일교포 주주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재일교포는 신한금융의 뿌리다. 신한금융이 지난해 6년 연속 순이익 1위를 달성하는 등 독주를 하는 데 이 뿌리가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신한금융이 글로벌 금융으로 도약하려면 재일교포 주주들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의 신한금융을 만든 재일교포 주주들의 공은 인정돼야 한다"면서도 "신한금융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지배구조가 합리적이고도 투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한금융이 국내 1위 금융회사를 넘어 세계적 금융회사로 성장하려면 재일교포의 과도한 영향력이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라응찬 전 회장의 '제왕적 리더십'도 재일교포 주주들의 비호 속에서 가능했다. 또 신한금융 역사에서 오점으로 남은 신한사태에서도 재일교포 주주들과 신한금융 경영진 사이에 있었던 모종의 거래가 드러났다. 이 때문에 재일교포 주주들이 보유지분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관행은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계는 연임에 성공하면서 회장 선출방식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한 회장이 재일교포 주주의 과도한 영향력을 줄이는 방안을 함께 내놓을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 신한사태 때 드러난 재일교포 주주의 막강 파워


2010년 터진 신한사태는 신한금융의 지배구조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재일교포 주주들의 힘이 처음으로 공개된 사건이기도 했다. 재일교포 주주들은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신한사태가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과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자 재일교포 주주들이 전면에 나섰다.


2010년 9월9일 신한사태의 주역인 세 사람은 나고야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재일교포 주주들이 신한사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세 사람을 일본으로 소환했기 때문이다. 라응찬 회장은 당시 비행기에서 직원이 건네준 자료를 열심히 읽었는데, 자료 표지에 적힌 ‘간친회(懇親會)’는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간친회는 30여 재일교포 원로 주주로 구성된 모임이다. 신한사태 당시 전체 재일교포 주주는 5천여 명 정도였는데 간친회가 이들을 대표했다. 간친회는 17% 정도의 지분을 보유한 재일교포 주주들을 결집해 신한금융의 실질적 대주주 역할을 했다.


신한금융의 경우 뚜렷한 대주주가 없고 기관투자자나 소액주주들이 주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친회로 결집된 재일교포 주주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세 사람이 간친회의 부름을 받자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간 것도 이들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라응찬 회장이 1991년부터 약 20년 동안 신한은행에서 제왕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이희건 명예회장 등 재일교포 주주들의 전폭적 지원 덕분이었다.


당시 신한사태를 수사한 검찰은 재일교포 주주들이 오랫동안 세 사람의 스폰서 역할을 해왔던 사실을 밝혀냈다. 신상훈 사장과 이백순 은행장은 재일교포 주주로부터 각각 8억6천만 원과 5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라응찬 회장도 거액을 받은 사실을 포착했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하지 못했다.


재일교포 주주들은 신한금융 핵심 경영진에 자금을 지원해주면서 그 대가로 자금관리에 도움을 받았고 거액의 대출도 손쉽게 받아 온 것으로 검찰수사 결과 드러났다.


재일교포들은 신한금융의 17%라는 지분을 토대로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4명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한금융 회장 선출 과정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동우 회장이 2011년 초 신한금융 회장으로 오를 때도 한 회장은 재일교포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애를 먹었다. 재일교포 주주들은 신한사태를 일으킨 라 회장을 매우 부정적으로 대했다. 따라서 후임 회장을 뽑는 과정에서 한동우 회장이 라응찬 회장 사람이라는 점을 들어 공공연히 반대했다. 재일교포 주주들은 한동우 회장의 대항마로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을 내세웠다.



  신한금융은 재일교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 신한사태 당시 대립했던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왼쪽)과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회사 사장(오른쪽)

◆ 재일교포 주주들 구애 나선 한동우


한 회장은 2011년 2월14일 차기 신한금융 회장으로 내정됐다. 신한금융 특별위원회 9명의 위원 중 과반수의 득표를 얻었다. 하지만 실세인 재일교포 주주들의 지지를 얼마나 얻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윤계섭 신한금융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무기명 투표였기 때문에 재일교포 사외이사들 간 합의가 이뤄졌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동우 회장은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기 전인 2월22일 일본으로 향했다. 그는 서진원 신한은행장과 함께 오사카를 시작으로 나고야와 도쿄를 잇따라 방문했다. 재일교포 주주들을 달래고 경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행보였다.


당시 재일교포 주주들은 신한금융 회장으로 밀었던 후보가 떨어지자 영향력 약화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회장은 이런 우려를 잠재우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신한금융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곳곳에서 암초를 만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한 회장은 특히 오사카 주주들에게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오사카는 신한금융을 창립한 원로들이 많은 곳으로 상징성이 크다. 오사카 주주들은 특히 라응찬 회장과 대립했던 신상훈 사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라응찬 사람’으로 분류되던 한동우 회장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회장은 “재일교포 주주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환영한다는 분위기지만 혹시 모를 주주들의 섭섭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의 일본행은 회장 취임 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2011년 7월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전략적 제휴 관계에 있던 미즈호 금융그룹 등 주요 주주들을 만났다. 미즈호는 신한금융 지분 1.26%를 보유하고 있다. 한 회장은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이사회를 열었다. 또 2012년 2월 기업설명회를 연다며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한 회장은 지난해 7월 임기만료 8개월 정도를 남겨두고 재일교포 주주들을 만났다. 당시 한 회장의 행보에 대해 연임을 위한 포석을 까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한 회장은 “재일교포 주주가 자녀 혼사에 초청해 가는 것이지 공식적 업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말은 재일교포 자녀의 혼사를 챙길 정도로 한 회장이 유임을 위해 재일교포 주주들을 챙기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재일교포 주주들의 절대적 영향력은 사외이사 수에서 나온다. 신한금융 경영진이 매년 신년인사를 위해 일본을 방문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지분 17%에 비해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4명을 차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많다. 신한은행 창립 당시 6명이었다. 그나마 전체 사외이사 수가 줄면서 재일교포 추천 이사수도 줄었다.


한 회장은  “신한은행은 재일교포 주주들이 뜻을 모아 창립됐다”며 “그분들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현재 비율을 유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 신한금융에 뿌리박힌 재일교포 주주


신한금융의 뿌리인 신한은행은 창립자인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이 오사카지역 재일교포들과 함께 만든 한국 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이다. 이 명예회장은 1955년 교포 상인들을 모아 오사카흥은(大阪興銀)이란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 명예회장은 재일동포들이 한국투자에 어려움을 겪자 직접 은행을 설립하기로 하고 1977년 신한은행의 전신인 제일투자금융을 세웠다.


  신한금융은 재일교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 신한은행의 창립자인 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
신한은행은 1982년 공식출범했다. 이 명예회장은 오사카지역 재일교포 340여 명으로부터 출자금을 모아 자본금 50억 엔(당시 250억 원)과 점포 4곳, 임직원 274명으로 신한은행을 창립했다.


신한은행은 그뒤 빠르게 성장했다. 출범 7년만인 1989년 11월 증권거래소 상장에 성공했고 1994년 총 수신 10조 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96년 총 수신 20조 원을 넘기며 출범 14년 만에 대형은행으로 성장했다.


신한은행은 여러 선진 금융기법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은행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금융기법을 가진 일본에서 시작된 은행이었기에 가능했다. 신한은행은 1991년 국내 최초로 PC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했고 1993년 국내 최초로 무인점포인 ‘365일 바로바로 코너’를 열었다. 텔레뱅킹과 인터넷뱅킹 도입도 신한은행이 최초로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조흥은행 인수합병을 통해 4대 금융지주사에 이름을 올렸다. 신한은행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시장에 매물로 나온 조흥은행을 2003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조흥은행은 강원은행과 충북은행을 합병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한은행이 이를 그대로 넘겨받게 됐다.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완전한 합병은 2006년 이뤄졌다. 조흥은행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조흥은행을 인수해 가장 오래된 은행이라는 ‘역사’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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