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기술이 정보통신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이 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중국 일본 등이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양자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는 데 비해 우리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민간기업들만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양자기술은 하나의 정보 단위(비트)가 여러 값을 동시에 지닐 수 있고 외부 자극에 매우 민감한 양자의 특성을 컴퓨터, 암호통신 등에 응용하는 기술이다.
상용화가 이뤄지면 기존의 컴퓨터 기술과 보안체계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획기적 기술로 평가받는다.
이론적으로는 현재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수 천년이 걸려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수 분 내로 해결할 수 있어 '꿈의 기술'로도 불린다.
현재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한국의 이동통신사는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역시 국내외 양자컴퓨터 관련 기업을 향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양자기술 개발에 민간이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과 달리 정부의 투자는 매우 미진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자기술을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서의 세 가지 분야로 구분하고 양자 컴퓨터 관련 기술 개발 및 생태계 조성을 위해 2020년부터 5년 동안 44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현재 양자기술에 투자하고 있는 금액의 4%, 중국이 투자하고 있는 금액의 0.4%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예산이다.
그나마 과기정통부가 신청한 양자암호통신 테스트베드 구축을 위한 60억 원의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과기정통부는 2017년에도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기술개발 사업을 위한 예산을 신청했지만 기획재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보통신기술은 발전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특징을 지닌다. 한 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힘들다는 뜻이다. 정부의 투자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미 한국은 양자기술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조금씩 뒤처지기 시작했다.
17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퀀텀(양자) 플래그십 컨퍼런스’에서 위르겐 믈뤼넥 퀀텀 플래그십 의장은 현재 세계 양자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국가로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를 들었다. 한국이 민간 분야에서 양자기술을 선도하고 있음에도 선도국에서 제외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초고성능컴퓨팅(슈퍼컴퓨터) 분야에서 때를 놓쳐서 쓴맛을 본 적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5대의 슈퍼컴퓨터 가운데 국내에서 개발된 슈퍼컴퓨터는 한 대도 없다. 성능도 낮다.
성능이 가장 좋은 슈퍼컴퓨터 누리온은 초당 14페타플롭스(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나타내는 단위)의 연산을 처리하는데 미국의 ‘서밋’보다 10배 이상 느리다.
한국은 2012년에 이르러서야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위원회’를 만들고 슈퍼컴퓨터와 관련된 투자에 나섰는데 그 당시 미국, 일본, 중국 등은 현재 우리나라의 최고급 슈퍼컴퓨터인 누리온과 비슷한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만들고 있었다.
과기정통부는 2025년까지 초당 30페타플롭스의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국내 기술로 개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슈퍼컴퓨터의 발전속도를 보면 2025년에는 초당 500~600 페타플롭스의 연산을 처리하는 슈퍼컴퓨터가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행히 양자기술은 아직 선진국에서도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완전한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를 이뤄낸 나라는 없다. 아직 기회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민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과감한 투자와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슈퍼컴퓨터의 아픔도 있지만 정부의 과감한 선제적 투자를 통해 5G통신 선도국이 됐다.
한국의 양자기술이 ‘슈퍼컴퓨터’가 아니라 ‘5G통신’이 되기를 바란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