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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
삼성그룹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을 발표한 데 이어 이틀만인 2일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을 내놓았다. 전광석화 같은 사업구조 개편이다.
무엇인가 쫓기는 듯 인상조차 줄 정도의 속도다. 삼성그룹은 사업 시너지를 내기 위한 합병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밝힌 마하경영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완성하기 위해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사업구조 재편과 함께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 이재용 부회장의 실질적 승계를 형식적으로도 완성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삼성그룹 내에서 이미 이재용 시대를 열기 위한 그랜드 플랜을 짜놓고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지 않고 불과 이틀 만에 이런 합병 소식을 쏟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과거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비롯해 삼성 계열사 주식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회장 비서실을 중심으로 모든 계획을 짜놓고 일사분란에서 진행한 바 있다. 이번에도 미래전략실이 이재용 시대에 대한 모든 계획을 세워놓고 시간표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9월 이후로 눈에 띄는 사업구조 개편을 여섯 번이나 단행했다.
지난해 12월 제일모직 패션부문이 삼성에버랜드로 양도됐다. 같은달 삼성SDS는 삼성SNS를 흡수합병했다. 10월 삼성디스플레이가 코닝에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을 매각했다. 또 11월 삼성에버랜드가 급식 식자재 사업을 분사하고 에스원에 건물관리사업 부분을 넘겼다. 이어 지난달 31일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2일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을 결정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사실상 삼성그룹에서 ‘회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해외에서 나가 있는 사이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 최지성 부회장과 함게 주요 계열사 보고를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의전의 격이 사실상 회장 수준으로 올라있다.
이건희 회장은 부쩍 국내를 비우고 있다. 2000년 폐암 수술을 받은 후 호흡기 질환 때문에 해외 체류기간은 점점 길어지는 추세다. 2012년 7번 출국해 144일 동안 해외에 있었고, 지난해 5번 출국해 228일 동안 해외에서 보냈다. 이 회장은 2010년 3월 경영복귀 선언 이후 국내에 있는 동안 매주 화요일 출근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에 있더라도 출근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지난해 신경영 선언 20주년 기념 만찬도 당초 6월 예정에서 두 번이나 연기됐다.
이런 상황들로 볼 때 삼성이 ‘이재용 시대’의 실질적 개막을 앞당기기 위해 사업구조 개편을 통한 지배구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시대가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물론 삼성그룹 측은 사업상 필요에 의한 합병이라고 철저히 강조한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사업상의 변화일 뿐 지분 변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뭐라 해석을 달기 어렵다”고 말했다. 종합화학과 석유화학의 합병도 지배구조 개편보다는 사업 시너지를 위한 순수한 합병이라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