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할머니’로 불렸던 헬렌 토머스 전 UPI 기자는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를 시작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취재한 최장수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다.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내외신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일문일답을 포함한 신년 기자회견을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열고 있다. <연합뉴스> |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고 물어 난처하게 만드는 등 ‘촌철살인’으로 유명했다.
기자는 진실을 밝히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못된 질문’을 하거나 무례한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예의를 지키고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틀에 박힌 질문만 한다면 어떻게 꼭꼭 숨겨진 진실을 캐낼 수 있겠는가.
특히 권력과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권력을 감시할 비판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자의 무기가 질문이기도 하다.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화제다.
기자들에게 자유롭게 질문의 기회를 주고 대통령이 공을 들여 대답하는 모습에서 권위주의와 결별하고 진일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가 대통령에게 한 질문이 적절했는지를 놓고도 여러 말이 나돈다.
김 기자는 대통령에게 “현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고 변화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고 싶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고 물었다.
김 기자를 향해 비난이 나온다. '대통령에게 돌직구를 던진 기자'가 되고 싶은 영웅심리가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해주는 어떠한 공익적 목적도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8월4일 헬렌 토머스 기자의 89번째 생일을 맞아 컵케이크를 선물하고 있다. |
아마도 사실에 근거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기자의 기본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 기자는 “누구나 다 느끼는 점을 국민을 대신해 물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안타까울 뿐이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는 헬렌 토머스 전 UPI 기자의 말처럼 사실에 근거해 치밀한 준비로 촌철살인의 질문을 던져 ‘무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면 우리사회가 더 좋아지고 있다는 마음이라도 들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자들은 충분히 무례할 수 있다. 다만 국민을 대신해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어깨를 짓누르는 엄중한 책무를 안고 '무례함의 자유'를 지녀야 한다.
헬렌 토머스 전 UPI 기자는 레바논계 이민 2세였는데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폴란드나 독일로 가야 한다”는 실언으로 결국 언론계를 떠나야 했다.
엄중한 책무를 갖추지 않은 기자의 말과 글의 무례함은 그렇게 무섭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