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리포트 4월] 전기차 100만 시대 드러난 '충전기 리베이트', 보조금 정책 허점 바로잡아야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모 아파트 단지. 지난 1월 이 단지에는 멀쩡히 사용되던 전기차 충전기가 갑작스럽게 교체됐다. 노후화가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큰 고장이 없었다는 점에서 입주민들은 의문을 제기했다.이후 특정 충전사업자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금품이나 각종 편의 제공이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교체 이후 충전요금까지 상승하면서 주민 불만이 커졌다. 일부 주민들은 왜 굳이 충전기 교체가 필요했는지, 왜 특정 업체가 반복적으로 선정되는지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의 측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이 사례는 최근 아파트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리베이트' 의혹과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전기차 보급 확대라는 정책 목표 아래 정부는 충전기 설치 비용의 상당 부분을 보조금으로 지원해왔다. 초기 인프라 부족을 빠르게 해소하고 민간 사업자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실제 이같은 정책은 단기간에 충전 인프라를 늘리는 데 성과를 냈다.올해 2월 말 현재 전국 전기차 충전기는 총 50만8356기(완속 45만 2886기·급속 5만 5470기)로 2021년 10만6701기(완속 9만 1634기·급속 1만 5067기)에 비해 4.7배 늘었다. 2월 말 기준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93만9756대로, 아직 공식 집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100만 대를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보조금 중심의 정책 구조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집단 주거 공간에서는 충전기 교체 설치가 사업자들의 '영업권 확보 경쟁'으로 변질되면서 시장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충전 사업자들은 안정적 이용 수요가 보장된 아파트 단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조건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공식적 가격이나 서비스 경쟁을 넘어 비공식적 금전 제공, 이른바 '리베이트' 관행이 개입될 여지가 커진다는 점이다.일부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소장 등 관계자에게 현금성 이익이나 편의를 제공하고 계약을 따낸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러한 구조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뿐 아니라, 시장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더 큰 문제는 이같은 교체 비용이 결국 소비자의 충전요금에 전가된다는 점이다. 사업자는 초기 수주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회수해야 하고, 그 수단으로 충전요금을 높게 책정하거나 각종 수수료를 요금에 추가 부과한다.실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충전요금이 외부 공용 충전소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형성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만 해도 완속 충전기 요금은 킬로와트아워(kWh) 당 200원 초중반 대였지만, 최근엔 300원을 훌쩍 넘는다.KG모빌리티의 코란도 EV가 충전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KG모빌리티 >또 보조금 구조는 불필요한 설비 교체를 유도하는 문제도 안고 있다. 보조금이 신규 설치나 교체 실적에 연동되다 보니, 아직 충분히 사용 가능한 충전기조차 교체 대상으로 고려된다. 이는 자원의 낭비일 뿐 아니라 공공 재정의 비효율적 사용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장기적으로 안정적 운영이 중요한 충전 인프라가 단기 실적 중심의 사업 구조에 종속되는 셈이다.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부터는 스마트제어 기능이 적용된 완속 충전기에만 설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스마트제어는 충전기에서 전기차의 배터리 충전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완충 시 충전을 차단하는 기능을 말한다.기존 완속 충전기 보조금은 대당 140만 원이었지만, 스마트제어 기능이 있는 완속 충전기 보조금은 220만 원으로 인상됐다.이 때문에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지 2~3년밖에 지나지 않은 구형 충전기를 걷어내고, 스마트제어 기능이 있는 새 충전기를 경쟁적으로 교체하려는 사업자들이 많아졌다. 이 과정에서 불법 뒷거래가 발생하고, 이렇게 교체된 충전기는 요금이 높아져 이용자만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충전기 보조금 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설치 중심의 지원에서 벗어나 운영 성과 중심으로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몇 대의 충전기를 설치했는지가 아니라 실제 이용률, 가동 안정성, 이용자 만족도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는 사업자가 장기 서비스 품질 개선에 집중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또 아파트 내 충전사업자 선정 과정의 투명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표준화된 입찰 절차를 마련하고, 계약 조건과 선정 과정의 공개를 의무화하면 리베이트 개입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외부 감사나 공공기관의 모니터링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이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충전요금 산정 기준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일정 수준의 충전요금 가이드라인이나 기름 값처럼 가격 상한제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이용자가 합리적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 이는 시장의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전기차 전환은 단순한 산업 변화가 아니라 에너지, 환경, 도시 정책이 결합된 구조적 전환이다. 그 핵심 기반인 충전 인프라 시장이 왜곡된다면 정부 정책의 효과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보조금은 시장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수단이지만, 설계가 잘못되면 오히려 부작용을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이제 충전기의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개선으로 정책의 초점을 옮겨야 할 때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구조를 만들고, 이용자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제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이번 리베이트 논란을 계기로 촉발된 충전기 보조금 제도의 허점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같은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책의 신뢰는 디테일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김승용 산업&IT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