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데이'로 촉발된 일베 폐쇄론, '혐오 표현 처벌 입법' 현실화 가능성 높아져
'탱크데이'로 촉발된 일베 폐쇄론, '혐오 표현 처벌 입법' 현실화 가능성 높아져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폐쇄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면서 혐오·조롱 표현을 둘러싼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일베와 같은 극우 커뮤니티를 폐쇄하고 협오 발언을 일삼아온 이들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실제로 마련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은 정교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3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조롱과 혐오를 방치하는 온라인 공간에 대한 제도적 대응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면서 그동안 국회에서 제기돼온 혐오표현 규제 입법 논의도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앞서 이 대통령은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일베처럼 조롱과 모욕으로 사회분열 갈등을 조장하는 데 대해 표현의 자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처벌을 포함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병존한다"며 "조롱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과 징벌배상, 일베처럼 조롱 혐오를 방치 조장하는 사이트 폐쇄, 과징금 등 필요 조치를 허용하는 데 대한 공론화와 실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적었다. 국무회의에 지시하겠다고도 밝혔다.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최근 잇따른 사회적 논란과 맞물려 나왔다.이 대통령은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진행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이벤트를 두고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행태에 분노한다.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20일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했다는 논란을 빚었던 2019년 무신사 광고를 게재하며 "돈이 마귀라지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나"라고 비판했다.정치권에서는 이를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민주화운동과 역사적 희생, 특정 지역과 집단에 대한 조롱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다.현행법 체계에서는 특정 개인에 대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처벌이 가능하지만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법 적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는 28일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일베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이 혐오와 조롱 문화를 차단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한국은 집단 혐오를 규제하는 법률 자체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는 대부분의 사안이 개인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처리되지만 혐오의 본질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공격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해외에서는 이미 집단 혐오와 증오 선동을 별도 범죄로 규율하거나 플랫폼 사업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대표적으로 독일은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형법 제130조의 '국민선동죄(대중선동죄)'를 두고 있다. 공공의 평온을 해치는 방식으로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거나 폭력을 부추기는 행위, 모욕적 멸시와 중상 등을 엄격히 처벌한다. 나치 범죄를 부정하거나 찬양하는 행위도 곧장 처벌한다.독일은 형사처벌에 그치지 않고 2017년 네트워크집행법(NetzDG)을 제정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업자에게 위법 게시물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등 플랫폼 책임 강화의 선도적 사례로 평가받았다. 그 뒤 유럽연합(EU)은 2022년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채택해 불법 콘텐츠 신고·삭제 절차와 초대형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규제를 EU 차원으로 확대했다.일간베스트저장소 홈페이지 이미지.이 같은 흐름은 혐오표현이나 불법 콘텐츠를 방치한 플랫폼에도 일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이 대통령이 제기한 혐오표현 규제와 사이트 책임 논의와도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5년 11월 특정 국가나 국민, 인종 등을 대상으로 한 허위사실 유포와 모욕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는 특정 개인을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어 특정 국가나 인종, 국민 전체를 향한 혐오 표현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법 적용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윤후덕 민주당 의원도 2025년 12월 출신 국가와 국적, 지역, 민족, 인종, 피부색 등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을 규율하는 '출신 국가를 이유로 한 혐오표현 규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주민과 난민, 중국계 주민 등을 향한 혐오 표현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직접 규제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다.법안은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조장과 공개적 모욕·위협, 차별적 내용의 온라인 게시·배포 등을 금지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정명령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다만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도 만만치 않다.법조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혐오표현의 개념 자체가 광범위하고 모호한 만큼 국가가 표현을 직접 규제하기 시작할 경우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특히 조롱과 풍자, 정치적 비판까지 혐오표현 범주에 포함될 경우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김 교수 역시 인터뷰에서 "어떤 집단을 보호할 것인지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고 판례를 축적해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에 따라 앞으로 논쟁의 핵심은 일베 폐쇄 자체보다 집단 혐오와 증오 선동을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지, 또 플랫폼 사업자에게 어느 수준의 책임을 부과할 것인지에 모일 것으로 전망된다.결국 이번 논쟁은 특정 사이트의 존폐 여부를 넘어 민주주의 사회가 혐오와 조롱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또 이를 규율할 법적 기준을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로 확장되고 있다.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관련 입법을 언급한 만큼 여권을 중심으로 국회도 혐오표현 관련 입법 논의를 다시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허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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